미국 방송국 운영자가 한국전쟁 당시 북한 사람을 구한 일을 회상하다
선교사는 미군 병사 출신 험프리가 운영하는 미국 방송국에게 현석 등 탈북자 일행이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고 알렸다.
미국 방송국에서는 미국에 온 지 오랜 시간이 안 되어서 미국 생활이 낯선 상태임에도 탈북자 일행이 이렇게 흔쾌히 인터뷰 요청을 수용해 주어서 고맙게 생각한다는 뜻을 선교사를 통해서 현석 등 탈북자 일행에게 전해 주었다.
탈북자 일행과 인터뷰 일정을 잡은 미국 방송국을 운영하는 미군 병사 출신 험프리는 수십 년 전 한국 전쟁 당시를 기억하면서 깊은 감회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수십 년 전 한국 전쟁 당시 많은 북한 사람들을 만났었고 수십 년이 흘러서 다시 북한을 탈출한 탈북자 일행과 인터뷰를 험프리가 미국에 와서 설립한 방송국이 진행을 하게 되어 북한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이었다.
미군 병사 험프리 자신도 한국이라는 낯선 땅에서 목숨을 걸고 고생을 했지만 그 당시 험프리 자신이 운행하는 배로 수많은 북한 사람들을 구한 일은 그의 고생을 녹여주는 고귀한 일이었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는 그런 역사에 남을 일을 하게 된 데 대해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한국전쟁 당시 수많은 사람들을 미군 병사 험프리가 운행하는 배에 싣고 구해 준 일은 그 이후 험프리가 미국 생활을 할 때도 항상 삶의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한국 전쟁 당시 북한을 떠나면서 남쪽으로 가는 배를 운행하는 임무를 내가 맡고 있었을 당시 남쪽으로 가기를 원하는 북한 사람들의 맑은 눈동자가 마치 어제 일 같이 생생하게 눈앞에 보이는 것 같네. 그때 그런 북한 사람들을 외면했다면 나는 평생 죄책감에 시달렸을 것 같네. 미군 상급자가 북한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고 내가 운행하는 배에 북한 사람들을 태우도록 허락해 주어서 나는 수많은 북한 사람들을 싣고 그들을 기적적으로 구했어. 그런데, 수십 년이 지나서 다시 이렇게 내가 미국에 돌아와서 세운 방송국에서 북한을 탈출한 탈북자를 인터뷰하기로 한 지금 이 순간은 너무나도 감동적인 순간이야. 한국전쟁 당시 내가 운행했던 배에 탔던 북한 사람들의 얼굴이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이 나는 것 같아.'
미군 병사 출신 험프리는 수십 년 전을 회상하면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래, 이번 탈북자와의 인터뷰는 다른 사람을 시키지 말고 내가 직접 하기로 하자. 아무래도 내가 수십 년 전에 한국전쟁 당시 북한 사람들을 구했던 경험도 있어서 한국에 대해서는 미국 사람들 중에서 그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고 있으니까 이번에 북한을 탈출한 사람들과 말도 많이 통할 것 같아. 한국전쟁 당사 내가 한국에서 있었던 장소들 그 중애서도 북한애서 았었던 장소를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으니 탈북자들하고도 그 장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고 말이야. 그리고 한국전쟁 당시 수많은 북한 사람들을 구했던 경험을 이야기하면 보다 많은 미국사람들 아니 전 세계의 사람들이 이번 탈북자와의 인터뷰를 더욱 감동적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네.'
미군 병사 출신 험프리는 이번 현석 등 탈북자 일행과의 인터뷰를 자신이 직접 진행하겠다고 방송국 실무자를 불러 이야기했다.
"탈북자 일행과 하기로 한 인터뷰 진행은 내가 직접 하기로 했네. 내가 미군 병사 시절 한국전쟁에서 한국을 직접 경험해 보아서 그 누구보다도 내가 인터뷰를 하는 것이 효율적이고 시청자들에게도 강한 인상을 남길 것 같네."
방송국 실무자는 방송국을 운영하고 있는 험프리의 이야기가 뜻밖이었다.
"굉장히 이례적인 생각을 하셨네요. 저희들 실무 부서에서는 누가 탈북자 일행과의 인터뷰를 진행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탈북자와의 인터뷰는 자주 발생하는 일이 아니어서 누가 적합한 진행자가 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저희 실무부서 내부에서도 여러 이야기가 나와서 저도 고민을 많이 하고 있던 중입니다. 그런데, 사장님이 직접 인터뷰를 진행하신다고 하시니 놀랍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고민이 사라진 것 같아서 홀가분한 마음입니다."
고민을 덜게 되었다는 실무자의 이야기에 험프리는 웃음을 지었다.
"그런가? 내가 이번 탈북자와의 인터뷰를 진행하기로 한 것이 실무자들의 고민을 덜어 주게 되었다니 나로서도 정말 반가운 말이네. 이번 탈북자와의 인터뷰는 내가 책임지고 진행하겠네. 인터뷰를 담당하는 실무자들이 더 이상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네."
"사장님이 이렇게 직접 인터뷰를 진행하시기로 결정하셨으니 당장 실무자들의 고민은 줄어들었습니다만, 사장님이 직접 인터뷰를 진행하는 이번 인터뷰에서 혹시 기술적인 문제 등으로 실수라도 발생한다면 저희 실무자들이 더욱 비난을 받을 수 있어서 다른 면에서는 저희들의 부담도 커지는 것 같습니다."
실무자의 마음을 들은 험프리는 걱정하지 말라고 실무자를 격려했다.
"아니네.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네. 방송국을 운영하는 내가 인터뷰를 한다고 해서 다른 인터뷰보다 더 중압감을 가질 필요는 없네. 혹시 어떤 실수나 착오가 발생하더라도 어떠한 책임도 실무자들에게는 묻지 않겠네. 그러니까 마음 편하게 먹고 인터뷰 실무 작업을 진행하도록 하게."
방송국 실무자도 이제야 마음이 편해지는 듯 웃음을 보였다.
"사장님이 한국전쟁 당시 한국에서 직접 생활하신 경험이 있으니까 한국 문화에도 익숙하시니까 북한을 탈출한 탈북자와의 인터뷰를 잘하실 것 같습니다."
"그렇네. 한국전쟁에서 익힌 한국말 중에서 지금도 한국말 몇 개는 기억하고 있어. 인사하는 말로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라는 말이 있다네"
험프리는 마음씨 좋은 동네 아저씨 같이 웃음을 지으면서 실무자의 긴장을 부드럽게 누그려 뜨려 주고 있었다.
마음이 놓인 방송국 실무자는 험프리의 말에 장단을 맞춰 주었다.
"이번에 사장님이 탈북자를 인터뷰하는 일은 영화나 드라마보다도 더 감독적인 실화가 될 것 같습니다. 드라마나 영화 시나리오를 써도 그런 스토리를 만들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드라마나 영화보다도 더욱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감동적인 인터뷰가 될 것 같습니다."
"그런가? 생각해 보니 그렇네. 영화나 드라마보다도 더욱 감동적인 인터뷰를 내가 한국전쟁 후 수십 년이 지나서 진행할 수 있다니. 이런 감동적이고 역사적인 인터뷰를 하게 되어 나도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있네"
험프리와 실무자는 이번 인터뷰가 뜻깊은 인터뷰가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물하게 되리라고 자연스럽게 느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