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맞춘 정장에는
철없는 내가 있었고
여름에 맞춘 정장에는
무모한 내가 있었고
가을에 맞춘 정장에는
버티던 내가 있었고
겨울에 맞춘 정장에는
참아내는 내가 있었다.
이번 주 결혼식에는
지금의 내가 가야 하는데
이런,
맞는 정장이 없다.
버릴 옷도 없고
입을 옷도 없다.
결국 축의금은
계좌이체로
계절마다 입던 정장이 이제는 하나도 맞지 않는다. 예전에는 봄이면 가볍게, 여름이면 땀을 흘리며, 가을과 겨울에는 각자의 무게를 견디며 자연스럽게 옷을 입었는데, 지금은 옷보다 몸이 완전 변했다.
나이가 들수록 활동량은 줄고, 바쁘다는 핑계와 피곤하다는 이유로 몸을 방치해온 시간들이 결국 이렇게 나타난다. 옷이 줄어든 게 아니라 내가 늘어난 것인데, 그 사실을 인정하는 데까지도 시간이 필요했다. 옷장 앞에 서서 하나씩 꺼내보지만, 버릴 옷은 없고 입을 옷도 없다. 애써 맞춰보려다 포기하고 다시 걸어두는 순간이 반복된다.
이번 결혼식도 결국 정장을 입지 못한 채 보내게 될 것 같다. 조금 씁쓸하지만, 이 모습이 지금의 나라는 생각도 든다. 다만 다음에 정장을 꺼낼 때는, 지금보다는 덜 미루고 덜 외면한 모습이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