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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하라 강변 Oct 11. 2020

08 미래를 위한 그림

- 힐마 아프 클린트(1862-1944)

다음 질문에 대답해 보자.

추상회화의 선구자나, 대표적인 화가는?


아마도 대부분은 칸딘스키, 몬드리안 정도를 떠올릴 것이다.


여기에 '역사(미술사)는 다시 쓰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나는 이러한 논의를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뛴다.


작년(2019)에 이직을 하면서 난생처음 미국이란 데를 다녀왔다.

뉴욕에서만 2주간 머물렀기에 정확하게는 '뉴욕 여행'이겠다.


미술관, 공연, 공원, 리빙샵, 시장, 맛집, 멋집을 두루 쏘다니며

내 인생 최고로 풍요로운 여행을 했었다.


그중에서도 최고의 경험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구겐하임 뮤지엄의 '힐마 아프 클린트-미래를 위한 그림' 전시라 말하겠다.


칸딘스키는 1935년 한 편지에서

"실제로 '그 그림'은 세계 최초의 추상화입니다. (중략) 그것은 역사적인 그림입니다."라고 썼다.

'그 그림'은 그가 1911년 처음 그린 추상화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보다 적어도 5년 앞선 1906년부터 아래와 같은 그림을 그려온 이가 있었다.

(The Ten Largest, no.7, Adulthood(성인기), 1907)

(The Ten Largest, no.1, Childhood(아동기), 1907)


(외쪽) No. 3a, Buddha's Standpoint in Worldly Life, 1920) / (가운데)  Altarpiece(제단화), 1915/ (오른쪽) 진화15번



(왼쪽) 진화 16번 (Evolution, no.16),1908/

(가운데) 무제, 1920년/

(오른쪽) 원시적 혼동(Primodial Chaos),1906

(왼쪽) The Swan, no.17, 1915/ (오른쪽) Altarpiece(제단화), 1915
(외쪽) The Dove, no.1, 1915/ (오른쪽) The Dove, no.13, 1915


위 작품들을 그린 작가는 바로

힐마 아프 클린트(Hilma af Klint, 1862-1944)라는 스웨덴 출신 여성화가다.


그녀는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스톡홀름 왕립미술원을 졸업한 전문화가였는데,

당시 철학가, 예술가, 종교가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신지학[theosophy, theo(신)+sophia(지혜), 보통의 신앙이나 추론으로는 알 수 없는 신의 심오한 본질이나 행위에 관한 지식을, 신비적(神秘的)인 체험이나 특별한 계시에 의하여 알게 되는 철학적, 종교적 지혜 및 지식_네이버, 두산백과]에 심취했다고 한다.


그녀는 당대의 사회와 과학, 사상의 흐름을 연구하며 1906년 '원시적 혼(Primodial Chaos)'라는 연작을 그렸고, 그 이듬해(1907) 무려 3m의 대작 '10개의 가장 큰 그림(The Ten Largest)' 시리즈를 각 사흘 만에 완성했다고 한다. 우주의 일부로서의 나, 그리고 당대 과학지식을 반영한 물질의 가장 작은 단위인 (보이지 않는) 원자의 개념을 전제한 여러 작품을 그리기도 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동안 그녀의 존재를 알지 못했던 것일까?


1908년 그녀는 당대 신지학 협회장이자, 저명한 철학자였던 루돌프 슈타이너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의 그림들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자신의 작업에 대한 지지와 평가를 바랐겠지만, 슈타이너는 애석하게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이 그림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테니 향후 50년 동안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마십시오."


충격을 받은 그녀는 이후 4년 동안 작업을 멈추었지만,

그 무엇도 그녀의 작업을 계속해서 멈추게 할 수는 없었던 것 같다.


이후 그녀는 사회와 과학, 사상의 흐름을 연구하며 오랫동안 자신만을 위한 작업들에 계속해서 매진했고,

만 81세로 영면했다.

그녀는 1300여 작품과 125권의 노트를 조카에게 상속하면서,

본인의 작품을 사후 20년간 세상에 공개하지 말 것을 유언으로 남겼다.


1970년대에 이르러 그녀의 조카(Johan af Klint)는 스웨덴을 대표하는 현대미술관(Moderna Museet)에 찾아갔으나, 그녀가 신지학에 심취했다는 이야기만 듣고

작품을 보지도 않은 채 전시를 거절했다고 한다.


'힐마 아프 클린트-래를 위한 그림'(Beyond the Visible-Hilma af Klint, 2019)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한 디르스츠카(Halina Dyrschka) 감독 역시 비슷한 답변을 들었다. 영화 작업을 위해 현대미술의 중심 역할을 하는 MOMA에 '(과거) 추상미술 기획전시에 그녀가 등장하지 않았던 이유'를 문의했는데, “Hilma af Klint의 예술이 추상 미술로 역할을 했다는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녀가 평생 전시를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 수 있었겠습니까?”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무려 사후 42년 만인 1986년에야 비로소 그녀의 작품 일부가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기획전에서 처음 대중에 공개되었다. 그리고 2013년 자신의 조국인 스웨덴 스톡홀름 현대미술관에서 '추상미술의 선구자(A pioneer of Abstraction)'라는 전시가 개최되었는데, 이 전시는 노르웨이, 스페인, 덴마크, 독일 베를린까지 순회하며 관객 100만 명이 찾는 대흥행을 이뤘다고 한다. 내가 다녀온 뉴욕 구겐하임 전시도 그 연장선상 전시였던 것다.


1300여 점의 작품과 125권의 노트가

어느 날 갑자기 '타임캡슐'처럼 '발견'됐다.

그녀에 대한 보다 활발하고 깊이 있는 연구가 계속되기를 진심으로 라며,

앞으로 한국에서 그녀의 시를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역사에서 '최초'라는 수식어는 아주 중요하다.

사실을 확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에 대한 소개글은 여기까지 이며,

이제 추상미술의 선구자에 대한 판단은

모두 당신의 몫으로 남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런 모든 논의를 떠나

그녀의 작품 '자체'만으로도

우리에게 충분한 영감과 매력을 선물한다고 확신한다.








(참고: 구겐하임 힐마 아프 클린트 전시와 책, 다큐멘터리 영화 '힐마 아프 클린트-미래를 위한 그림', 더가디언 기사 ‘They called her a crazy witch’: did medium Hilma af Klint invent abstract art?등을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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