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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하라 강변 Oct 10. 2020

07 식탁 위의 시와 그림

- 나를 위한 선물

흔히 삶의 목적을 '잘 먹고 잘 사는 것'이라 한다.


그래서 직장인들에게 점심시간이 매우 소중하고,

'별일 없이' 보내는 날의 여유로운 저녁 식사시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누구나 집안에서 회자되는 어릴 적 얘기 한 두 개쯤은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

아기 때부터 모유와 분유의 맛, 그 구조물의 질감(?)에 대한 선호가 확실해

모유만 찾는 바람에 어머니께서 고생을 많이 하셨다고 들었다.


그래서 개월 수가 얼마 차이 나지 않는 사촌 동생과 큰 외숙모님의 젖을 함께 나눠먹었으며,

(그래서 유난히 큰 외숙모님을 따르고 좋아한다)

아기가 목욕탕에서 만난 풍만한 아주머니를 애처로운 눈으로 쳐다보는 바람에

모르는 분의 젖을 얻어먹기까지(!!) 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들으면 언제나 웃음이 나는 얘기다.


어머니는 유난히 식사시간을 중시하셨다.

교사를 하시다가 가정에 충실하고자 학교를 그만두셨는데,

아침, 점심, 저녁을 단 한 끼도 거르지 않고

정성스레 챙겨주셨다.


대학교 1학년 때 다른 지역에서 온 친구와 기숙사 룸메이트가 되었는데,

중, 고등학교 때 어머니께서 자주 늦잠을 주무시는 바람에

점심시간 다되어 도시락을 배달받거나,

포장 도시락을 받았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속으로 매우 놀랐던 기억이 난다.


간혹 아침에 5~10분 정도 늦은 적은 있으나,

어머니는 도시락 준비에 한결같이 성실하고 철저하셨다.

그래서 '거의' 한 번도 등굣길에 도시락을 못 가져간 날이 없었다.

('단'이라고 쓰고 싶지만, 기억은 주관적이기에 '거의'라고 쓴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던 거다.

다시금 생각해

그것이 얼마나 어렵고 감사한 일이었는지

새삼 깨닫는다.

 

그런 가정에서 자란 덕에

세 끼 중 한 끼라도 안 먹으면

정말 큰 일(?) 나는 줄 알고 자랐다.


누구나 어릴 때는 어머니가 해주시는

정성스럽고 따뜻한 음식을 먹고 자라지만,

성인이 되어 독립한 이후에는

스스로 챙겨야 한다.


내 경우 학업을 마칠 때까지는

라면과 어머니가 보내주신 음식 택배로

삶을 연명(?)했다.

택배가 오면 친구들을 불러 같이 먹거나

함께 나눴다.


그러다가 직장생활을 하기 시작했는데,

어머니는 곧바로 음식 택배 파업을 선언하셨다.

오랜 공부를 한 탓에 그동안 너무 고생을 시켜드렸기 때문이리라.


요. 알. 못인 내가 곧바로 요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니었다.


로펌 시절과 사내변호사로서의 업무를 시작했을 때에는

일을 익히고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일에 집중하느라

'잘 먹는 것'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당시에는 성공한 선배님이

좋은 레스토랑에 데려가 주시고

값비싼 음식을 먹는 것을  '잘 먹는 것'으로 알았다.


그러다 차츰 업무도 숙련되고

팀원도 한 둘 맞이하게 되면서

전보다 여유가 생기게 되었고,

한 두해 나이를 먹으면서

건강에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됐다.


요. 알. 못.이라 처음에 몇 번의 쿠킹클래스(한식, 중식, 태국, 쿠키와 케이크)를 들었다.

거기에 요리책과 방송, 유튜브 선생님을 통해

조금씩 요리를 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1) 제철 좋은 재료를 사서

(2) 직접 정성스럽게 요리를 하고

(3) 내가 아끼는 그릇에 담아

(4) 잘 차려 먹는 것.

그런 모든 행위들을 즐기게 되었다.


그중에 나는 (3), (4)에 꽤 신경을 쓴다.

나의 애정템이 바로 식탁매트와 수저받침, 그릇과 식기다.

예쁘게 담긴 음식이 맛도 좋다.


배달음식을 자주 시켜먹진 않지만,

그 경우에도 어울리는 내 그릇에 다시 담아 먹는 편이다.


그러면 모든 음식이

식탁 위에서 시와 그림이 된다.


그것이 바로 가까운 행복이고,

나를 위한 매일의 선물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아주 가끔은 지인들을 초대하여

맛있는 음식을 나눈다.


이 가을이 가기 전에

좋은 이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지리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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