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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하라 강변 Nov 21. 2020

13 H양 그리고 윗집

- 따뜻한 마음의 연결고리

지난 무더운 여름의 끝자락, 내 친구 H양이 주경야독과 임신, 출산을 모두 거치며 대학원 졸업을 했다.


H양을 소개하면, 내가 지방에서 갓 상경해서 촌티(?)를 벗지 못했을 때, 대학 기숙사에서 만난 사이다. 내가 촌스러웠다는 것이고, 그녀는 큰 키에 뽀얀 피부를 가졌고, 영어도 잘하고, 아주 활발한 성격을 가진 매력적인 아이였다. 중어중문학 전공으로 나와 같은 과는 아니었으나, 처음부터 그녀에 매력에 빠져 금세 친해지게 되었다. 그래서 다른 기숙사 친구들과 함께 미팅과 쇼핑을 하고, 중간 기말 시험공부도 같이 하고, 휴게공간에서 인기 드라마도 같이 보는 등 조잘조잘 재잘재잘 20대 초반의 풋풋함을 함께 공유했다.


내가 사법시험과 로스쿨 진학으로 오랫동안 공부에 매진(이라 쓰고 고시낭인이라 읽는다)하는 동안, 그녀는 대기업 건설사에 당당히 입사한 뒤 그 능력을 인정받아 고속 승진했다. 그러면서 미국, 에콰도르 등 해외에서 오랫동안 근무를 했었다. 함께 눈물 콧물 흘린 스펙터클한 일도 많았으나, 그녀는 해외근무 중 롱디 커플이 되어 결혼까지 장하게 해냈다. 결혼식에서 신랑을 보는 것이 열 번째인가 아마 그랬으니, 진정한 용자이기도 하다.


지금 생각해보니, 우리는 물리적 거리, 시차 등 멀어질 만한 사정도 정말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20년째 꽤 돈독한 친구사이를 유지해왔는데, 그것은 아마도 그녀가 사회생활이 늦은 친구를 살뜰히 챙겨주고, 해외에서도 꾸준히 연락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만남을 이어가는 노력을 기울여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다시금 감사한다.


그녀가 주경야독으로 대학원을 다니더니, 어렵게 임신에 성공해서 출산까지 했고, 육아휴직 중 논문까지 써서 제때 대학원을 졸업한 것이다. 얼마나 힘든 과정인지 잘 알기에, 친구로서 너무나 자랑스럽고 기뻤다. 그래서 단숨에 이솝 핸드워시를 졸업선물로 보냈다.


(코로나 시국에 정말 이만한 선물이 없다고 생각한다. 요즘 신경 써서 손을 자주 씻게 되는데, 씻을 때마다 싱그러운 향기에 기분이 좋아진다. 처음엔 나도 꽤 고가인지라 구입을 여러 번 망설였지만, 양을 조절해서 쓰니 정말 생각 외로 오래 쓰고 있다. 개인적으로 2020년에 산 물건 중 가장 만족하는 시국 아이템이다.)


그러다가, 추석 즈음해서 그녀가 집주소를 확인하며 이모님이 정성스레 기르신 배 한 상자를 보냈다고 했다. 그런데, 기다리던 배가 감감무소식인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길에 문에 붙어있는 쪽지를 발견했다. 나와 같은 호수에 사는 윗집분이었고, 배 한 상자가 자신의 문 앞 배달되었으니 찾아가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기쁜 마음에 바로 배를 찾아왔고, 열어보았더니 세상에나! 백화점에서 특상품으로 팔릴만한 크기의 탐스런 배가 가득 들어있었다. 신선하고 달고 향까지 좋은 훌륭한 배였다. 윗집 이웃에게 감사쪽지와 함께 배 2개를 종이백에 넣어 문 앞에 전달했다.


친구에게도 윗집분 덕분에 배를 잘 찾았으며 2개 나눔 해 드리고 남은 배를 맛나게 잘 먹겠다고 감사인사를 전했다. 그랬더니 친구 왈, 가족 외에는 나눌 수 없는 귀한 배라며 약간 안타까워하면서도 윗집이라면 인정한다고 했다.

그 후 1일 1배를 하면서, 배들은 모두 내 뱃속으로 사라졌고, 내 배의 토실함으로 흔적을 남겼다.


그러고는 두어달쯤 시간이 흘렀다.

지난 8월 브런치를 시작한 후 1주일에 1편 이상을 꾸준히 써왔는데, 최근 업무적으로 바쁜 일이 생겨 지난주 최초로 글쓰기를 건너뛰었다. 어제도 중요한 미팅 2건을 소화하고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도착하니 문 앞에 종이백 하나가 놓여있는 것이 아닌가.


윗집이었다.

"안녕하세요. 윗집입니다!

커피를 많이 선물 받게 되어서 나눔 해드려요.

지난번에 나눠주신 배를 맛있게 잘 먹어서 작은 보답이라도

하고 싶었는데 기회가 생겨 다행입니다.

좋아하시는 맛이었으면 좋겠네요.^^"


따뜻하고 감동적인 문구에 그날의 피로가 훅 날아가는 것 같았다. H양에게도 사진까지 찍어 공유하니 함께 기뻐해 주었다. 오늘 아침에 얼굴도 모르는 윗집분이 주신 커피를 따뜻하게 마시며 이 글을 썼다.


따뜻한 마음이 서로 전달되고, 돌고 돌아 다시 나에게 오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더 나누는 삶을 살고 싶다고,

세상의 온기를 나누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다시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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