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어릴 때 별명 하나쯤은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사실 별명보다는 이름으로 불렸던 아이였던 것 같다. 그래서 중고등학교 때 수련회나, 아이디 비번 찾기 힌트에서 쓰게 하는 '어릴 때 별명'을 적어야 할 때, 꽤 난감했다.
학창시절 집에서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부모님이나 형제자매에게 조잘조잘 얘기할 때가 많았다. 주요 등장인물은 보통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과 선생님 정도였다. 그래서 내 가족들은 만나본 적도 없는 내 친구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경우가 있었고, 우리 집에 처음 놀러 오는 날이면 '네가 00구나' 하는 류의 멘트를 곧잘 날리곤 했다. 나 역시 친한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 또는 대학시절 친구 부모님이 서울에 오셔서 함께 식사자리를 가질 때 그런 얘기를 듣곤 했다.
그런데 그렇게 되기까지는 숱한 설명과 노력들이 필요했다. 부모님이 3명이나 되는 자녀들의 모든 친구들의 이름을 기억하기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족들에게 학교 스토리를 이어서 설명하려면, 지난번에 얘기했던 '우리 반에서 키 작은 00', '피아노 학원에서 만난 00', '옆 반 반장인 00', '서울에서 전학 온 00' 등등 특징적인 설명을 붙여야 했다. 그렇게 해서 내 가족들은 자주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몇몇 친구들의 이름을 비로소 기억하게 되었다.
친구들이 사회생활을 하게 되자, 이제는 '선생님인 00', '**건설회사 다니는 00', '기자로 일하는 00' 등과 같은 설명이 붙기 시작했다. 지금의 나는 친구들 가족들에게 아마도 '변호사인 00', '공무원인 00' 이렇게 불리지 않을까?
그러다 최근 친하게 지내는 대학 후배 변호사를 통해 나에게 멋진 별명이 생긴 걸 알게 됐다.
그 별명은 바로 '욕조 언니'다. 푸하하.
나는 반신욕, 목욕, 사우나, 온천, 찜질(특히 전남 함평 해수약찜 최고!) 같은 것을 엄청 엄청 좋아한다. 따뜻한 물에 몸을 뉘이면, 근육의 긴장이 풀리고 무엇보다 따뜻한 온기가 느껴져 편안하게 힐링되는 느낌이 든다. 좋아하는 음악과 좋은 향기를 가진 배스쏠트와 함께라면 천국이 따로 없다. 그리고 물은 따뜻하고 공기는 차가운 노천탕은 정말 최애 최애 장소다. 국내 온천, 사우나, 찜질방의 노천탕 지도를 그릴 수 있을 정도다. 여행 장소와 호텔 등 숙박을 정할 때도 근처 또는 건물에 온천, 사우나 시설, 욕조가 있는지를 꼭 체크한다.
그래서 내가 살 집을 고르는 기준의 중요 순위에 '욕조'가 꼭 들어갔었다. 그런데 3년 전부터 살고 있는 지금 집을 선택할 때, 전망과 위치 등이 너무 마음에 들었으나, 샤워부스만 있어서 망설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결국은 이 집을 선택했고, 그래서 이사 후 이동식 욕조를 냉큼 사들였다(다행히 샤워부스 공간에 딱 맞았다).
같은 건물에 살고 있는 후배와 가끔 밖에서 평일 저녁 같이 식사하거나 또는 집으로 초대해 음식을 차려먹곤 했다. 후배는 처음 내 집에 왔을 때 본 이동식 욕조가 정말 강렬하게 인상적이었단다. 그래서 그 얘기를 엄마에게 했단다. 후배와 만남을 계속 이어가고 있으니, 이후 등장하는 스토리에서 그렇게 나는 '욕조 언니'로 통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