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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하라 강변 Nov 08. 2020

12 가을 아차산

- 간만의 트래킹

한 여자아이, 꼬마가 있었다.

7개월 만에 걸었다고 했고(근육 신동), 제 또래들보다 키가 큰 편이었다.

꼬마는 달리기가 좋다고 했다.

왜냐고 물으면,

달릴 때, '바람이 얼굴에 닿는 느낌''바람이 귓가를 스치는 소리'가 좋다고 했다.


바로 내 얘기다.


어릴 때부터 달리기를 무척이나 잘하고 좋아했다.

그래서 또래 남자아이들을 항상 앞지를 정도였다.

유치원 가을운동회(맨 앞에서 달리는 아이가 바로 나다.)


내 아버지는 청소년기에 정구(테니스와 비슷한 운동) 지역 대표로 도대회에도 나가셨을 정도로 운동을 잘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어릴 때 오빠와 나에게 수영, 테니스, 탁구, 배드민턴 등을 두루 가르쳐 주신 코치도 아버지셨다. 그리고 내가 유초등부일 때 등산동호회 같은 것을 하셔서,  고도가 높지 않고 바위가 많지 않은 산으로 가게 될 때에는 오빠와 나를 곧잘 데리고 다니셨다. 그래서 치마 입고 산에 올라 오빠와 멋진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진도 고향 본가에는 많이 있다. 아이들은 야외 콧바람을 쐬고 뛰어다니는 것을 좋아하니까 재밌게 잘 따라다녔던 것 같다.


그런데, 등산 자체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고향이 남쪽 지역이라 초, 중등학교 때 걸스카우트 활동, 각종 수련회 등으로 지리산 등산을 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너무나 높은 산을 끝도 없이 오르기만 하니 힘들기만 하고 전혀 즐겁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일까? 높은 산을 등산하는 것보다, 나즈막한 산, 둘레길, 성곽길, 산책로 등 완만한 경사를 오르락내리락하며 물소리도 들을 수 있는 곳으로의 트래킹 코스를 좋아한다.


오늘 친구의 제안으로 3주 전부터 가기로 약속했던 아차산 가을 트래킹을 다녀왔다. 빨강, 노랑으로 물든 아차산의 낙엽이 정말 예뻤고, 산 중턱에서 바라보는(그렇다. 아차산 정산까지 오르지는 않았다.) 탁 트인 도심과 한강의 경치가 아름다웠다. 낙엽이 바람에 우수수 떨어지는 운치 있는 순간도 좋았고, 낙엽을 밟는 느낌과 소리도 좋았다.




오전 9:30 광나루역에서 출발해 아차산 중턱까지 올랐다 내려왔고, 초입 편의점에서 친구와 '올해 첫 호빵'을 먹었다. 나는 팥 호빵, 친구는 야채호빵이 취향이었는데, 찬바람이 불면 먹는 호빵은 언제나 옳다. 그리고는 다시 워커힐 쪽으로 산책을 이어갔다. 넓은 한강에 햇빛이 비쳐 반짝이는 순간들이 가을을 만끽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한강변을 거닐어 보면, 한강이 생각보다 훨씬 거대한 강이라는 것에 새삼 놀라게 된다. 그 거대한 물줄기가 주변 토지를 비옥하게 했을 것이고, 그래서 과거 역사에서 한강유역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그렇게 많은 전쟁을 벌인 거구나 곧바로 수긍하게 된다. 나아가 그런 맥락에서 '한강 덕분에' 서울이 수도일 수 있다는 당위적인 생각 이르게 된다.


점심으로 광나루역 근처에서 편백나무찜을 먹은 후, 디저트로 서울 5대 떡볶이라는 아차산역 떡볶이를 먹으러 갔다. 친구가 걸으며 길가에 사람이 너무 없어서 낯설다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길가에서 사라진 사람들이 모두 떡볶이집 앞에 몰려 있을 줄이야! 웨이팅이 너무 길어 매장에서 먹는 것은 포기하고 포장을 해서 바로 근처 어린이대공원에 갔다. 샛노란 낙엽이 예쁘게 떨어진 대공원의 평상에서 먹는 떡볶이는 꽤 맵고 달았으나, 묘하게 중독성 있는 맛이었고 왜 인기 있는지 알 것 같았다.



많은 곳을 두루 돌아다녔다고 생각했는데 집에 오니, 3시 무렵이었다. 친구 덕분에 늘어질 수 있는 일요일을 매우 알차게 보낼 수 있었고, 아름다운 가을 풍경을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무려 2만보를 넘게 걸으며 조금 더 건강해졌다. 가을을 선물해 준 친구에게 감사한다.


벌써 11월 중순을 향해 달려가고 있고, 다음 달이면 2020년이 끝나는 12월, 연말이다.

2020년이 '오직' 코로나로만 기억되지 않도록, 이 가을의 끝자락을 늦지 않게 잡아보시기를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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