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법률상담 야무지게 받는 법
- 제발 이것만은 챙겨갑시다!
현재, 지자체에서 '불공정거래행위' 전문 법률상담, 분쟁조정, 정책지원 업무를 맡고 있다. 요즘 '공정'이란 화두가 사회적으로 너무나 강조되는 바람에, 일반 '민사상의 법률분쟁' 임에도 억울하거나 부당하면 모두 불공정하다고 판단하고, 바로 불공정거래행위 전문상담을 요청하시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 경우는 매뉴얼에 따라 기본적인 상담만 해드리거나, 타상담기관을 안내해 드리는 선에서 상담을 종료하게 된다.
이러한 혼란이 발생하는 이유는 (1) 일반인들이 인식하는 '불공정한 행위'와 (2) 공정거래법에서 정한 '불공정거래행위'의 개념이 다르기 때문이다. 공정거래법상의 '불공정거래행위'는 공정거래법 제23조 제1항에 다음과 같이 규정되어 있다.
1. 부당하게 거래를 거절하거나 거래의 상대방을 차별하여 취급하는 행위
2. 부당하게 경쟁자를 배제하는 행위
3. 부당하게 경쟁자의 고객을 자기와 거래하도록 유인하거나 강제하는 행위
4. 자기의 거래상의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하여 상대방과 거래하는 행위
5. 거래의 상대방의 사업활동을 부당하게 구속하는 조건으로 거래하거나 다른 사업자의 사업활동을 방해하는 행위
6. 삭제
7. 부당하게 특수관계인 또는 다른 회사를 지원하는 행위
8. 제1호 내지 제7호 이외의 행위로써 공정한 거래를 저해할 우려가 있는 행위
기본적으로 사적자치 원칙에 따라 법적으로 대등한 당사자 간에 이루어진 법률관계는 민법, 상법(상인) 등이 적용된다. 그런데, 근로, 하도급, 가맹점, 대리점 분야 등 현실적으로는 대등하지 않은 당사자들 사이에서 계속적 거래관계가 발생, 유지, 종료되는 경우 거래상 지위 차이로 인해 많은 문제가 발생되는 것을 점점 알게 됐다.
거래상 지위가 우월한 당사자가
(1) 자신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계약서를 미리 마련해 두고 서명날인하게 하거나,
(2) 계약서 없이 일을 시킨 뒤 비용, 대금을 현저히 깎거나,
(3) 자신이 부담해야 할 법적인 인허가 비용이나 손해배상책임을 떠넘기거나,
(4) 거래 중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내용으로 계약을 변경하거나,
(5) 정당한 사유 없이 반품하거나, 계약을 취소 또는 해지하는 경우,
반대로 거래상 지위가 낮은 당사자가
(5) 계약 해지를 하려면 과도한 위약금을 부담해야 하는 경우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대등한 당사자를 전제한 민법을 적용하는 대신, 대등하지 않은 당사자들 사이의 (주로) 계속적인 법률관계에서 약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새로운 법들이 필요했다. 그렇게 생겨나게 된, 사적자치 원칙을 제한하는 대표적인 법들이 바로 근로기준법, 공정거래법 등(특별법인 가맹사업법, 대리점법, 하도급법, 대규모유통업법 등)이다.
빈번하게 발생하는 '가맹사업' 관련 불공정거래행위를 예로 들어 설명해 보겠다.
'A(가맹점주)는 프랜차이즈 음식점 가맹본부(본사)와 계약기간 3년 계약을 체결하고 2년간 운영해 왔다. 그런데 인근에 동종 경쟁업체의 추가 출점, 엎친데 덮친 격으로 최근 코로나 영향으로 방문 고객이 현저히 줄어 몇 달째 계속 적자를 보고 있어 음식점을 더 이상 운영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A점주는 가맹계약을 해지하고 싶어, 가맹본부에 해지 의사를 전달했다. 그러자 가맹본부는 계약기간이 1년이나 남았기 때문에 지금 중도해지하려면 위약금 5,000만 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A는 어디서 어떻게 법률상담을 잘 받을 수 있고, 종국적으로 분쟁을 해결할 수 있을까?
법률상담은 비용부담 유무에 따라 유료상담과 무료상담으로 나뉘는데, (1) 유료상담은 법률사무소나 로펌, 법률상담 앱을 통해 받을 수 있고(상담료는 대체로 2~30분 내외에 5만 원 상당), (2) 무료상담은 대부분 국가, 지자체, 공공기관, 각종 단체 등을 통해 받을 수 있다(기관 사정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민원실에 무료법률상담 문의를 하면 상담을 연계해 주거나, 적당한 기관을 알려주는 경우가 많다).
자, 글이 길었지만, 결론은 여기다. 법률상담을 야무지게 잘 받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분쟁 관련 계약서류를 챙겨야 한다. 세상에나! 정말이지 법률상담 오시는 분들이 계약 내용도 살피지 않고 무턱대고 아무런 자료 없이 억울하다고 몸만 오시는 경우가 너무 많다. 계약서를 보관해 두지 않고 분실한 경우도 부지기수다. 이 경우 계약 내용을 알 수 없기에 정확한 법률상담을 해드리기가 정말 어렵다. 상대방의 행위가 계약상 근거가 있는 정당한 행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계약서라는 것이 계약 체결사실을 증명하는 '증명서류'이기도 하지만, 사실 계약서를 쓰는 주된 목적은 따로 있다. 바로, (1) 서로 이행할 '계약 내용을 분명히' 하여 분쟁을 미연에 방지하거나, (2) 사후적으로 분쟁이 생길 경우를 대비하여 '분쟁해결기준'을 정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계약이 종료될 때까지 계약서류(파일)를 일정한 장소(서류함 또는 컴퓨터)에 보관해 두어야 하고 이를 습관화하는 것이 좋다. 분쟁이 생긴 뒤에 분쟁 상대방에게 계약서류 사본을 요청하게 되면, 상대방은 재교부 의무가 없기 때문에(계약 체결시에 동일한 계약서 2부를 작성해서 각 1부씩 이미 나눠 가졌다), 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는 이상 호의로 그 계약서 사본을 제공해 주는 경우는 현실적으로 드물다.
둘째, 증거(서류, 문자, 카카오톡 메시지, 통화 녹음)를 수집해서 챙겨야 한다. 법적 분쟁이 생기게 되면 당사자들 간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1차적으로 통화나 문자, 카카오톡 메시지를 주고받게 된다. 그 과정에서 서로 계약 위반의 내용, 책임소재(잘못 인정) 등에 관한 대화를 주고받는다. 또한 이후 분쟁이 본격화되면, 당사자들은 법적 청구(소송, 조정 등)를 염두에 두고 분쟁의 증거를 만들기 위해 내용증명 공방을 이어 나가게 된다. 그러한 내용증명 역시 상대방이 계약 과정에서 어떤 잘못을 했고, 그러한 사유는 계약서 몇 조에 따라 계약해지/갱신거절/손해배상 사유가 되니, 그 책임을 부담하라는 내용이 담긴다. 그러므로 이러한 증거들은 법률상담자가 분쟁의 사실관계와 전개 양상을 파악하여 정확한 법률상담을 하는데 매우 중요하므로, 있다면 반드시 챙겨가는 것이 좋다.
이제는 다시 돌아가 위 가맹점 사례를 살펴보자. A점주가 체결한 가맹계약서에는 계약기간 중 가맹점주가 일방적으로 가맹계약을 해지할 경우 위약금 5천만 원으로 기재되어 있으므로, 일응 가맹본부(본사)의 위약금 요구는 계약상 근거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가맹사업법(가맹사업거래 분야의 공정거래 특별법) 제12조 제5항에서 '계약의 목적과 내용, 발생할 손해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비하여 과중한 위약금을 부과'하는 행위를 불공정거래행위로 규정하고 있고, 동법 시행령 제12조의2에서 '1.계약의 목적과 내용, 2. 발생할 손해액의 크기, 3. 당사자 간 귀책사유 유무 및 정도, 4. 해당 업종의 정상적인 거래관행'을 위약금 부당성 판단기준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법률상담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상담을 해드릴 수 있다. A 가맹점주가 가맹계약을 중대하게 위반한 다른 사정없이 경쟁점 과다 출점과 코로나 영향 등이 매출 감소의 주된 원인인 것을 전제로, (1) 계속된 매출 감소로 가맹점 운영이 어려운 사정에 비춰 볼 때, 가맹계약의 목적을 정상적으로 달성하기 어려운 경우로 판단되고, (2) 계약서상 5,000만 원의 위약금은 가맹계약 잔여기간의 장단과 관계없이 정액으로 규정되어 있어 불공정 소지가 있으며, A점주가 잔여 계약기간인 1년간 가맹점을 억지로 운영한다고 하더라도 가맹본부가 가맹비, 물류 마진 등으로 장래 얻을 수 있는 이익이 5,000만 원에 현저히 못 미친다고 판단되는 경우라면, A점주는 가맹본부에 위약금을 감면(감액 또는 면제)하고 가맹계약을 즉시 해지할 것을 협의해 볼 수 있고, 원만한 협의가 되지 않는다면 가맹사업분쟁조정협의회에 분쟁조정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법률상담에 계약서류와 증거들을 챙겨가는 것은 아주 기본인 것 같지만, 막상 분쟁이 시작되고 나면 걱정스런 마음이 앞서 버선발로 뛰어오듯 아무런 준비없이 오시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법률상담을 가게 된다면, 한 숨 돌리시고 계약서와 증거들을 차분히 꼭 챙겨가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