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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lin Chung Jun 04. 2016

한국축구가 져도 괜찮은 이유

직접 체험하면 생각이 달라진다.

스페인에 축구를 대패해서 역시나 말들이 많다. 

그런데 내겐 더이상 국대 축구팀을 비난하지 않게된 이유가 있다.



켈로그 MBA 시절 "켈로그 월드컵"이라는 걸 했다. 각국 학생들이 스스로 국가대표가 되어 토너먼트 형식으로 축구를 하는거다. 1-2학년 합쳐서 한국학생 대략 30여명 중 남자는 20여명. 일단 축구실력을 떠나 그저 방해 안되게 뛸 수 있는 체력의 나이인 사람은 대여섯이다. 하지만 11명 + 후보선수까지 생각하면 대략 축구란걸 해 본 사람은 전원 투입해야했다. 나는 한국남자 중 나이가 가장 어린 축에 속했으므로 당연히 투입됐다.


MBA때 운동파 미국애들과 친해져서 함께 운동하다보니 내 평생 중 가장 몸 상태가 좋았기에 나름 자신감도 있었다. 키는 상대적으로 작지만 뭐 마라도나나 메시도 있지 않나.


이때가 2007년이고, 한국 축구사에 길이 남을 언빌리버블했던 2002년 월드컵이 불과 5년전이라, 한국 축구에 대해 이야길 나눠보면 나름 위상이란게 조금 생겼음을 느꼈던 터, 한국의 명예를 지키리라 폼나게 스트레칭하고 필드에 올라갔다.


그리고 유럽 친구들과 몸싸움 딱 한 번 하고 나서 뼛속까지 현실의 벽을 느꼈다. 아 이게 장난이 아니구나. 일단 뼈의 두께와 골격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다리가 한 번 격렬하게 얽히면 부러질 것 같고 어깨를 부딪히면 튕겨져 나간다. 가히 압도적이고 넘사벽이었다. 체력도 엄청난 차이다. 유럽애들 스피드 따라서 공수교대 한번 하고 나면 심장이 터질 것 같은데, 얘네는 별로 힘들어하지 않는다. 기억하시라 이들은 다 20대 후반~30대 후반까지의 MBA 학생들이고 전에 직장생활 5년 이상 하다온 배나온 일반인들이다. 그런데 도무지 이길 수가 없었다. 


그런데 브라질 애들은 한 수 더 뜬다. 여자 선수도 투입했다. 이 여자사람친구가 왠만한 동양 남자보다 잘 뛰고, 몸싸움도 잘했다. 정말이지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쪽팔리니까 너무 큰 차이로 지지 않기만을 내내 바랬다. 


우리는 모든 게임을 다섯점 이상 차이로 크게 졌다. 그리고 당연히 예선탈락했다. 제발 우리같이 빌빌대는 중국이나 일본이나 동남아랑 붙었으면 싶었는데, 아쉽게도 그렇게 조를 짜주지는 않았다. 일반 월드컵이랑 똑같다. 그리고 FIFA 랭킹이 일반인의 축구실력에도 거의 들어맞았다.



이후, 국가대표 축구팀, 사실 모든 국가대표 운동선수들을  비난하지 않게 됬다. 아무리 요즘 한국인 발육이 좋아졌고 전문 운동선수라지만, 서양인과 타고난 몸이 - 체격도 체력도 회복속도도 - 다르다. (물론 서양인 중에서도 가녀린 사람들이 있지만, 비율적으로 적다) 그들 중에 선발 조련된 국대와 몸을 부딪혀가며 대등하게 뛴다는 것은 이미 일반인은 상상할 수 없는 초인의 경지인 거다.


2002 월드컵은 그래서 기적이었다 생각된다. 자국에서, 붉은악마의 힘을 업고, 히딩크의 마법에 의해 선수들이 뽕맞은 것 처럼 뛴 거다. (난 그 때 삼성전자 신입사원이었는데, 신입 주제에 역시 뽕 맞은 듯 위험(?)을 무릅쓰고 모든 경기날 조퇴를 하고 수원에서 서울로 와 시청앞으로 빨간 티를 입고 전쟁에 임하듯 비장한 마음으로 집결했다.)


다른 이야기지만 박태환은 한술 더 떠 "게임"이 아니라 "기록 경기" 인 수영에서 금매달을 땄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건지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에서 (해당 구간) 수영으로 가장 빠른 사람인거다. 혹시 펠프스를 직접 본 사람 있나? 난 우연히 미국 공항에서 본 적이 있는데, 이런 인간과 뭔가 몸쓰는 걸로 경쟁해서 이긴다는 상상을 한다는 자체가 말이 안될 정도로 압도적이다. 키나 몸 구조가 영화 "아바타"의 나비족 같다. 이런 사람같지 않은 인간수영기계를 박태환이 이겼다. 축구, 야구경기 등은 선수 개개인이 잘해도 운대가 따르지 않으면 질수도 있지만 기록 경기는 다르지 않나. 말 그대로 "세상에서 가장 xx한 사람"이 되는거다. 우사인볼트는 길 가다가 아무나 붙잡고 "나랑 한 번 100미터 뛰자" 라고 하면 다 이긴다고 올림픽에서 공인인증 해 주는 것이다.


축구경기가 지지부진하면 우리는 "투지가 없어 투지가", "아씨 체력이 왜케 약해", "얼씨구, 지고 있는데 걸어다녀???" "맨날 뻥축구 중거리 슛지랄" 하면서 TV 앞에서 편안하게 감독인냥 멘트를 던지고 다음날 인터넷 기사에 악플을 쏟아낸다.


한국인이 세계적으로 술 잘 마신다고들 하는데, 제대로 서양 친구들과 붙어보면 그게 오해임을 알게된다. 한국인은 술을 체력이 아닌 깡으로 마신다. 그리고 소주의 취하는 단계와 이후 대처법에 워낙 익숙할 뿐이다. 맥주나 보드카 위스키 등 서양인이 익숙한 술로 정말 알콜섭취량으로 "다이다이로" 붙으면 서양 친구들 못 이긴다. 설사 피튀기는 공방 끝에 양쪽이 전사하기 직전까지 가서 간신히 이겼다 해도, 그들은 아침에 수업시간에 늦지 않고, 수업 중에 졸지도 않으며, 숙제도 다 해왔다.


축구경기에서 국대 선수들이 힘들어 하면 난 그냥 마음이 아프다. 


'아 정말정말정말 힘든가보구나'


직접 뛸 거 아니면 응원해 주자.


Co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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