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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주 Oct 17. 2020

INTP에게 루틴이 필요한 이유

루티너리가 J형들만을 위한 게 아닌 이유

사실 INTP는 의심이 많고 남의 말을 더럽게도 잘 안 믿기 때문에 이 글을 쓰면서 어떻게 해야 설득력을 갖출 수 있을지 고민이 되긴 했다. 이들은 이야기나 상황에서 오류를 잘 찾아내고 스스로는 그리 논리적이지 못하면서 누군가 비논리적으로 이야기하는 걸 극도로 혐오한다. 이들 중에 엔지니어가 많은 건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그리고.. 나는 전형적인 INTP 엔지니어다.


내가 처음 MBTI 테스트를 한 건 고등학교 때 학교에서 해준 프로그램 때였는데, 그때 학급에서 유일한 INTP였다. 내가 유일하다는 사실을 살짝 좋아했던 게 기억이 난다. 최근에 다시 테스트를 했을 때도 마찬가지로 INTP가 나왔는데 처음에 비해선 P로 치우친 정도가 조금 덜했다. 처음엔 P가 극단적으로 높았다. 그 말은 굉장히 무계획적이고 정리정돈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의미 그대로 나는 계획하는 걸 정말 싫어했다. 사실 지금도 필요성을 느껴서 하는 것이지 좋아하지는 않는데, 언제 상황이 바뀔지도 모르고 그때그때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고 싶기 때문에 계획이 기본적으로 의미가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해하지 못하는 J형들의 소리가 들린다...)


그래서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행동 (=루틴)을 하는 게 J형에 비해 더 부담스럽고 불필요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나도 처음 루틴을 가지기 전까지 그랬었다. 아니나 다를까 여러 SNS에서 루티너리에 대한 사용자 피드백을 찾아보다가 "루티너리가 J형들에게 어울리는 도구"라는 의견을 보았다.


그런데 나는 내가 루티너리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루티너리를 사용하는 한 명의 P형 사용자로서 그 말을 반박하고 싶다. 그래서 루틴이 J형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몇 가지 이유로 설명해보려고 한다.


첫째, 루틴은 불필요한 고민을 줄여준다.


우리가 매일같이 하는 행동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하나하나를 떼놓고 보면 쉽고 별로 힘든 일이 아니지만 그 날 여러 가지 일들이 있거나 바쁠 때 그런 사소한 할 일 하나하나가 순간순간 떠오르고 머릿속에 인터럽트를 건다고 생각해보자. 분명 뭔가 하나, 둘 빼먹거나 잊어버리고 나중에 아차 한다. 그래도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INTP는 실용적인 것, 효율성을 굉장히 중요시하고 중요하지 않은 사소한 것에 대해 신경 쓰고 싶어 하지 않아 일상적으로 해야 하는 사소한 일들을 잊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것들을 루틴으로 관리하게 되면 사소한 것들을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더군다나 내가 집중해서 고민해야 할 문제에 인터럽트가 걸리는 일도 사라진다.


둘째, 루틴은 사실 엄밀히 말해 계획과 다르다. 자동화 도구에 가깝다.


계획을 하고 계획대로 이행하는 것은 우리가 가장 하고 싶지 않은 일 중 하나다. 그리고 우린 계획대로 하지 않는 걸 잘하기도(?) 한다. 그러니 혹시나 정말로 융통성을 발휘해야 할 상황이 오면 루틴을 잠시 미루고 그 일을 먼저 하면 된다. 루틴을 계획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자동화 도구라고 생각해보자. 어차피 그날 우리가 해야 하는 일들이다. 그런데 사실 별로 신경 쓰면서까지 해야 하는 일이 아니다. 그런 일들을 묶어서 자동화시킨다면 남은 시간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변할까? 남은 시간은 얼마든지 창의적이고 자율적으로 쓸 수 있다.


셋째, P형과 J형의 루틴 활용방식은 조금 다를 수 있다


미리 계획을 하고 체계적으로 하루를 보내고 싶은 J형의 경우에는 얼마든지 그런 방식으로 루틴을 활용할  있다. 그리고 그런 계획은 J형이면 다들 각자만의 방식이 있으니 따로 언급하지 않겠다. P형의 경우엔 앞서 말한 것처럼 루틴을   자동화 도구라는 것에 초점을 맞춰 내가 신경 쓰고 싶진 않지만  해야 하는 일들로 루틴 짜면 된다. (루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루티너리를 처음 쓰는 사람들에게 글을 참고하자)


내 경우엔 아주 사소한 잠자리 정리, 물 마시기, 샤워, 양치 같은 작은 행동부터 일상에 넣고 싶은 식사나 독서, 기술 공부, 스트레칭 같은 습관들을 루틴에 넣어 지금 할까? 나중에 할까? 할까 말까? 하며 고민하고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고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결론: 모두에게 루틴이 필요하다


사실은 이 글은 INTP만 해당되는 이야긴 아니고 모든 P형들에게 얘기해주고 싶은 내용이었다. 그런데 모든 유형들에게 설득적인 이야기일지 알지는 못하기 때문에 적어도 내가 잘 알고있는 INTP에게 타깃을 맞춰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J형은 루틴을 통해 삶이 계획적이고 체계화되고 정리정돈이 된다는 점에 감동을 느낀다. P형은 신경 쓰지 않고 쉽게 일을 처리할 수 있다는 점에 감동을 느낀다. 각자 감동의 포인트는 다르지만 모두가 삶을 개선하고 더 나은 내가 되고자 하는 마음은 똑같다. 루틴은 그걸 가능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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