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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나침반 Dec 27. 2021

Ref 성대현, 월매출 9천만원 포장마차를 접은사연

당시 Ref로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죠. 여느 연예인처럼 불안정한 연예인 생활 그리고 수입을 고민하던 결국 개그맨 정준하 님이 운영하던 오리궁둥이라는 포장마차를 롤 모델 삼아서 포장마차 사업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오리 궁둥이에 맞설만한 이름을 찾다가 결국은 병아리라는 이름으로 포장마차를 오픈했다고 합니다. 



강남에 포장마차를 오픈할 때 생각보다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동업을 했고 당시 4천만 원 정도 되는 돈으로 시작했다고 합니다. 당시 폐업한 가게를 인수해서 시작해서 큰돈이 들어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포장마차 병아리는 오픈하자마자 입소문이 돌면서 하루 300만 원 매출을 찍을 정도로 장사가 잘되었다고 합니다. 성공적인 사업이라고 큰 기대를 했었죠.


하지만 당시 동업을 했던 동업자의 스캔들이 큰 이슈가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동업자분의 스캔들로 매체에서 취재를 자주 오게 되면서 손님들이 불편해하셨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니 장사가 잘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한 연예 프로그램 리포터 분이 오셔서 성대현 님을 모자이크 처리하고 음성 변조까지 했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 비참한 마음이 들었다고 하네요. 하지만 워낙 4천만 원 정도밖에 투자하지 않아 당시 몇 개월 수입만으로 원금과 수익 일부를 가져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실 그가 잘나가던 포장마차를 접게 된 건 바로 왕게임과 클럽 부킹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포장마차가 잘 나갈 시절에 성대현은 자만심이 생겼다고 합니다. 클럽 와 왕게임에 빠져 가게문을 닫고 클럽에서 왕게임을 하는 수준까지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아는 왕이 된 사람이 시키는 일을 하는 그것에 빠져 들게 되면서 사업까지 망치게 되었다고 하네요. 


문제는 더큰곳에 있었다고 하네요. Ref 활동으로 많은 돈을 벌었던 그.... 아쉽게도 주식투자로 당시 벌어 놓은 돈의 120% 을 날리고 말았다고 하네요. 장인어른과 가족에게까지 빌린 돈을 갚기 위해서 몇 년 동안 밤무대 활동을 해야 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2005년 당시 경기는 활황이었고 주변에서 많은 분들이 주식투자를 권유했다고 하네요. 지금은 주식 투자는 전혀 안 하고 있다고 하네요.

ref 해체이후 사업을 하러 미국에 갔다가 한순간의 실수로 파산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결국 먹을 것을 살 돈도 없어서 낚싯대를 가지고 물고기를 잡으며 어부로 살았다고 합니다. 이러한 생활은 한 1년 정도 했고 한국인인 것이 부끄러워서 중국말을 하기도 했다고 하네요. 그 이후 ref 멤버 이성욱의 전화로 한국으로 돌아와 ref를 재결성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한가정의 가장으로 사는 게 좋아요. 아내와 딸 두 사람의 제 삶의 전부이고 두 사람을 위해서 더 열심히 일하고 있어요" 2008년 한 케이블 프로그램을 통해서 Ref 재결성하면서 활동을 시작했고 복귀한 지 단 두세 달 만에 30군데 이상에서 행사가 쏟아져 들어왔다고 합니다. 재결성 후 이제는 재미있고 편안한 마음으로 방송에 임한다고 하네요. 성대현 그가 지금은 생계형 방송을 하면서도 웃을 수 있는 건 바로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생활을 견뎌 냈기 때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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