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Ref로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죠. 여느 연예인처럼 불안정한 연예인 생활 그리고 수입을 고민하던 결국 개그맨 정준하 님이 운영하던 오리궁둥이라는 포장마차를 롤 모델 삼아서 포장마차 사업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오리 궁둥이에 맞설만한 이름을 찾다가 결국은 병아리라는 이름으로 포장마차를 오픈했다고 합니다.
강남에 포장마차를 오픈할 때 생각보다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동업을 했고 당시 4천만 원 정도 되는 돈으로 시작했다고 합니다. 당시 폐업한 가게를 인수해서 시작해서 큰돈이 들어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포장마차 병아리는 오픈하자마자 입소문이 돌면서 하루 300만 원 매출을 찍을 정도로 장사가 잘되었다고 합니다. 성공적인 사업이라고 큰 기대를 했었죠.
하지만 당시 동업을 했던 동업자의 스캔들이 큰 이슈가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동업자분의 스캔들로 매체에서 취재를 자주 오게 되면서 손님들이 불편해하셨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니 장사가 잘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한 연예 프로그램 리포터 분이 오셔서 성대현 님을 모자이크 처리하고 음성 변조까지 했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 비참한 마음이 들었다고 하네요. 하지만 워낙 4천만 원 정도밖에 투자하지 않아 당시 몇 개월 수입만으로 원금과 수익 일부를 가져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실 그가 잘나가던 포장마차를 접게 된 건 바로 왕게임과 클럽 부킹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포장마차가 잘 나갈 시절에 성대현은 자만심이 생겼다고 합니다. 클럽 와 왕게임에 빠져 가게문을 닫고 클럽에서 왕게임을 하는 수준까지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아는 왕이 된 사람이 시키는 일을 하는 그것에 빠져 들게 되면서 사업까지 망치게 되었다고 하네요.
문제는 더큰곳에 있었다고 하네요. Ref 활동으로 많은 돈을 벌었던 그.... 아쉽게도 주식투자로 당시 벌어 놓은 돈의 120% 을 날리고 말았다고 하네요. 장인어른과 가족에게까지 빌린 돈을 갚기 위해서 몇 년 동안 밤무대 활동을 해야 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2005년 당시 경기는 활황이었고 주변에서 많은 분들이 주식투자를 권유했다고 하네요. 지금은 주식 투자는 전혀 안 하고 있다고 하네요.
ref 해체이후 사업을 하러 미국에 갔다가 한순간의 실수로 파산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결국 먹을 것을 살 돈도 없어서 낚싯대를 가지고 물고기를 잡으며 어부로 살았다고 합니다. 이러한 생활은 한 1년 정도 했고 한국인인 것이 부끄러워서 중국말을 하기도 했다고 하네요. 그 이후 ref 멤버 이성욱의 전화로 한국으로 돌아와 ref를 재결성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한가정의 가장으로 사는 게 좋아요. 아내와 딸 두 사람의 제 삶의 전부이고 두 사람을 위해서 더 열심히 일하고 있어요" 2008년 한 케이블 프로그램을 통해서 Ref 재결성하면서 활동을 시작했고 복귀한 지 단 두세 달 만에 30군데 이상에서 행사가 쏟아져 들어왔다고 합니다. 재결성 후 이제는 재미있고 편안한 마음으로 방송에 임한다고 하네요. 성대현 그가 지금은 생계형 방송을 하면서도 웃을 수 있는 건 바로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생활을 견뎌 냈기 때문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