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이란 무엇일까?
내가 불안이라는 감정을 알기 시작했던 것은 초등학교 무렵 다마고치를 처음 본 순간이었다.
여름 어느 날인가에 부모님과 어느 문구점을 방문했는데 처음으로 다마고치를 봤다. 갖고 싶었지만 말은 못 하고 누군가 사서 없어져 버리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심지어는 그날 밤 꿈에도 나왔었다.
정말 문제가 될 정도로 불안을 경험한 건 중학교 때부터였다. 중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중간고사를 앞둔 그 당시 학교 선생님들은 이번에 일정 수준 이상의 성적을 받지 못하면 고등학교 진학이 어려울 것이라며 사실상 불안을 조장했다. 그때 난 정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다. 학교만 오면 스트레스받고 화장실에서 우는 나를 친구들은 처음에는 위로해 주다가 나중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당시 나는 집에만 가면 아빠한테 전화를 해서 빨리 퇴근해서 집에 와달라고 부탁했다. 공부할 때 꼭 아빠가 옆에 있어야 했다. 아빠가 같이 있으면 불안해도 괜찮았기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유난스러운 딸이었지만 우리 아빠는 하나뿐인 딸내미가 덜 불안할 수 있도록 일찍 퇴근해서 집에 오고 나를 많이 챙겨주셨다. 그래도 아빠 딸내미라고 그렇게까지 내가 불안한 걸 챙겨준 게 너무너무 고맙다.
근데 이때 아빠랑 했던 말 중에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아빠한테 성적을 잘 못 받을까 봐 걱정된다고 하니까 아빠가 그때 하셨던 말은 이랬다.
"그런 생각을 왜 해, 걱정되면 그냥 그 시간에 열심히 하면 돼."
사실 그땐 아빠의 말이 이해가 안 됐다. 근데 그로부터 한 15년이 지난 지금 남편과 나의 불안과 관련된 얘기를 하게 됐는데 남편도 비슷한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왜 해? 그냥 실제로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것만 생각하면 되지!"
그 말을 듣고 나는 그 옛날 아빠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십몇 년 산 어린 내가 아빠의 말을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30년을 넘게 산 지금의 나는 아빠와 남편의 말을 좀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왜 나는 안되면 어쩌지라는 말에 사로잡혀 그 많은 세월을 고생했을까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마침 며칠 전 자기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에 관한 팟캐스트를 들었기 때문에 나는 그것과 연관 지어서 '안되면 어쩌지'라는 나의 불안을 돌아보았다.
그러다가 깨달은 것은 '아 그건 사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아니었고 사실 하기 싫었구나'라는 것이었다. 어쩌면 하기 싫으니까 열심히 하는 척은 하는데 제대로 하지는 않고, 제대로 하지 않아서 원하는 결과가 이뤄지지 않았을 때 내가 빠져나갈 수 있는 변명거리를 주기위함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30대가 된 지금 내가 경험한 지난날에 의하면 나라는 사람은 주로 '안 되면 어쩌지'라는 생각은 사실상 '내가'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나 주변에서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들을 이뤄야 한다고 생각할 때 주로 많이 했었다.
막상 정말 원하는 것을 이루고 싶고 절박할 땐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그냥 내가 바라는 것을 이루기 위한 발판을 다지려고 노력하는 데에만 집중했었다.
그 예로 내가 교사가 되기 위해서 임용고사 준비를 할 때는 '안되면 어쩌지'라는 생각을 많이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으며 결국 세번의 쓴 고배를 마셨었다. 반면에 미국에 석사 유학을 와서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미국에서 취업을 하고 영주권을 따기 위해서는 '안되면 어쩌지'라는 생각을 한적이 없다. 그땐 그저 '될 때까지 해보자' 라는 생각만 했다. 그리고 안됐을 경우는 막상 그 일이 일어나면 그때 생각을 하자라고만 단순하게 생각하고 넘어갔었다.
전자는 내가 하고싶어서 선택한 길이 아니었고, 후자는 내가 정말로 원했고 스스로 선택한 길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안되면 어쩌지'라는 말 뒤에는 어쩌면 하기 싫은 나와 정말 그걸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는 내가 숨어있는 것이 아닐까? 라고 말이다.
만약 내가 하기 싫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 일을 왜 해야 하는지, 그게 정말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인지, 아니면 그것 외에도 내가 정말 시간을 아낌없이 투자하고 싶은 다른 것이 있는지, 만약 하기 싫음에도 해야만 하는 일이라면 '안되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잠식되지 말고 그 시간에 목표 달성에만 집중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것을.
반대로 하고 싶은 다른 무언가가 있다면 그리고 그게 본인의 미래에 도움이 된다면 시간 낭비하지 말고 거침없이 하고 싶은 것을 밀어붙이라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