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빵틀 벗어나기 프로젝트
그렇게 모욕적인 헤어짐은 내 인생에서 처음이었다. 당시에는 그때까지 한 번도 차여본 적이 없어서 상대방이 나를 찬다는 것에 면역이 없기도 했었다.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내가 헤어지자는 말을 먼저 하기는 했다. 하지만 우리가 모두 아는 “이럴 거면 우리 헤어져!”의 일종인 실상은 “내 말을 들어줘!”의 의미를 가진 말이었을 뿐이었다.
화가 나면 항상 이럴 거면 헤어지자는 말을 달고 살기는 했었지만 항상 나에게 져주던 사람이 “그래 헤어지자”라고 인정했을 때 나는 정말이지 심장이 멎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전화기를 붙잡고 울면서 우리가 왜 헤어져야 하냐고 계속해서 물어봤더니 돌아온 대답은 이것이었다.
“어차피 우리 엄마도 너 말고 나랑 비슷한 조건의 여자를 만나는 게 낫지 않겠냐고 그러시더라.”
처음에는 듣고서도 무슨 소리인지 이해를 못했다. 처음에는 ‘무슨 소리지? 너랑 비슷한 조건의 여자는 뭔데?’라는 생각부터 ‘그러면 나는 조건이 어떤데?’ 생각까지 정말 별의별 생각을 다 했었던 것 같다. 나중에는 내가 들은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면서 내가 지금 아침드라마의 한장면을 찍는 중인가 까지도 생각했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때 사실 우리는 헤어질 만했고 했고 헤어질 수 밖에 없는 시점에 와있었다. 그리고 이때의 헤어짐이 결과적으로 나의 자아를 형성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헤어지고 나서 많은 생각을 거친 나는 내가 당당하기 위해선 내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위치에 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 아줌마가 내 조건을 운운한 건 기가 막히고 본인이 그런 소리를 할 만큼 잘난 집안 출신도 아니다. 있는 거라곤 미국 시민권을 가진 아들 그리고 나름 미국에서는 의사라고 불리는 아들의 타이틀이 전부일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한국에서는 의사도 아닌데 말하자면 길어지니 생략하겠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당시의 나는 내 자신도 자신을 만족스럽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 아줌마가 한 말에 더 흔들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나를 발전시키자였다.
나는 다시는 저런 말 따위를 듣지 않는 위치에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마음 한켠에 미뤄뒀던 미국으로의 유학 결심을 하게 되었다. 미국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이미 어렸을 적에 아빠를 따라 미국에서 생활해 본 적이 있고 가장 편한 제 2외국어는 영어였으며 이미 연락을 하는 미국 친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나는 미국에서 내가 한국보다 더 성공 할 수 있다는 실제 경험에 근거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물론 경험이라는 게 초등학교 때의 경험이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한국에서 노력한 만큼 미국에서 똑같이 노력한다면 그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었으면 얻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에 차 있었다.
그러나 나의 이런 생각이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과 동일할 수는 없는 법, 유학을 결심하고 나자마자 나는 제일 큰 난관에 부딪혔다. 그 난관의 이름은 바로 ‘엄마’였다.
“너 판타지 소설 쓰니?”
인정한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 아빠가 해리포터를 사다 준 이후로 판타지 소설 광팬이기는 하다. 심지어 대학교 때까지만 해서도 영화마을에 주구장창 소설책을 빌리러 가던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딸내미가 큰맘 먹고 유학을 준비하겠다고 말을 하는데 거기다 대고 저런 식으로 말한 건 좀 상처였다.
엄마와 나는 내 진로에 대해서 항상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때까지 나는 한 번도 엄마에게 정면으로 부딪쳐서 엄마와 다른 아이디어를 제시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아마 엄마도 내가 하는 말이 정말 생뚱맞다고 생각했을 거 같긴 하다. 어쩌면 엄마는 내가 헤어지고 나서 살짝 미쳤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그렇게 생각해도 뭐라고 할 수 없는 게 헤어지고 나서 며칠 동안은 미친년처럼 방에서 울고 침대에서 시체처럼 누워있다가 갑자기 약을 한 사람처럼 신이 나서 노래를 부르면서 거실을 돌아다니다가 갑자기 우리 강아지를 끌어안고 울기는 했었기 때문에 엄마가 저렇게 말한 건 나름 순화시켜서 말한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는 했다.
엄마랑 더 말해서 설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날부로 나는 조용히 유학 준비에 돌입했다. 어차피 말로 해서 안 될 거면 그냥 실제로 결과를 가지고 와서 보여주자는 생각에서 나온 행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