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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 YI NA Nov 22. 2022

목마와 숙녀_박인환

시 비평

화자는 술을 마시면서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에 대해 먼저 언급한다. 왜 하필이면 버지니아 울프일까? 실제 버지니아 울프는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고 한다. 자살 방식은 옷에 주머니에 돌을 넣어 강물로 점차 들어가는 것이었다.

버지니아 울프의 죽음 방식과 숙녀의 옷자락은 죽음의 층위에서 연관성을 가진다. 그렇다면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라는 것은 숙녀가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이 된다. 목마를 본인의 의지로 타고 떠났다는 표현으로 유추해보건대, 숙녀 또한 버지니아 울프처럼 스스로 죽음을 감행했다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여기서 목마는 죽음을 그렇게 어두운 것으로만 형상화하지 않는다. 목마는 놀이동산을 연상시키도 하고,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유희적 대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숙녀가 택한 죽음은 그리 우울한 죽음은 아니라는 의미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죽음이 놀이동산 가듯이 환상적으로 유아적으로 표현되고 있으나 그다음 행부터 이에 대해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가을 속으로 떠났다. 5행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숙녀가 떠났던 환상성 짙은 죽음의 세계에서 가을로 떠났다. 가을은 무엇인가? 지상의 슬픈 계절이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술병에서 별이 떨어졌다고 한다. 버지니아 울프의 자살,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환상적 죽음의 관념이 눈앞의 술잔으로 옮겨와 별이 떨어졌다고 말하고 있다. 위대한 문학가의 죽음조차 술병에서 별이 떨어지듯이, 즉 술병에서 다시 술이 나오듯이 그들의 죽음의 환상성에 환멸을 가한다. 그에 따라 상심한 별(술)은 나의 가슴에 환멸감으로 부서진다.


그러다가 7행부터 소녀가 언급이 된다. 소녀가 초목 옆에서 자란다고 하는 것은 죽은 소녀가 묻혔다는 것이고, 상심과 환멸은 느끼면서도 죽음을 애도한다는 것이다.


9~10행에는 문학, 인생, 사랑, 애증의 개념이 등장한다. 여기에서 문학, 인생, 애증을 모두 포괄하는 가장 큰 개념이 사랑의 진리이다. 이는 ~ 마저라는 표현이 주는 범위에서 알 수 있다. 사랑에는 그림자처럼 진리로서 따라다니는 애증이 반드시 있을 수밖에 없고, 우리가 애증의 감정을 늘 부끄러운 것으로 여기고 부정하고 싶지만, 사실은 그것 없이는 사랑의 진리는 죽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이는 즉, 우리가 그토록 아름답게 예찬하는 사랑의 관념이 사실은 애증이 없으면 성립되지 못할 정도로 때론 굴욕적이고 나약한 감정이라는 것이다. 문학도 인생도 그에 따라 사실은 지적 허영과 성공에 대한 무조건적인 존경을 덜어내면 그처럼 허망하다. 그러니 문학도 죽고 인생도 죽고라는 표현 또한 사랑의 진리가 사라지는 방식과 동일한 방식으로 환멸성을 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이지 않게 그 허영과 가식은 우리 삶에 팽팽히 존재하고 있다고 이 시는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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