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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 YI NA Feb 14. 2023

삼손과 들릴라

Aphorism

블레셋에게 40년 간 침략 당하는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신은 ‘삼손’이라는 자를 태어나게 한다. 블레셋(팔레스타인)은 전쟁을 위한 철과 무기가 잘 갖춰졌으나 이스라엘은 그렇지 못했다. 문명의 발달이 미약했던 것이다. 삼손의 힘은 블레셋 사람들은 한 번에 1천 명을 죽일 정도로 막강했다. 어느 때는 집을 통째로 들고 돌아다닐 정도였으니까. 블레셋 사람들은 힘으로는 삼손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삼손이 사랑하는 그 치명적 여인 들릴라를 돈으로 매수했다. 금전적 보상을 걸고 삼손의 비밀을 캐내라는 것이었다. 힘의 근원을. 그런데 하필이면 삼손이 사랑하는 여자는 이스라엘 여자가 아니었다. 블레셋 나라의 여자였다. 들릴라의 입장에선 조국의 운명이 걸려 있는 일이니 사랑이라는 감정이 그 거대한 정치적 이유를 이기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 들릴라에 의해 삼손의 비밀은 탄로 나고 블레셋 사람들에 의해 삼손은 치욕스러운 노예로 전락한다. 그러나 그 전락은 삼손에서 끝나지 않는다. 맷돌을 돌리는 노예 일을 하다가 서서히 다시 힘이 생기기 시작한 삼손은 블레셋 궁궐을 아예 뒤엎어 버리고, 지금까지 그가 죽였던 사람의 수보다 훨씬 더 많이 사상사가 발생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삼손, 그 자신도 죽고 만다.


흔히 이 신화의 주제는 삼손의 어리석음을 비판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부정한 여인을 멀리할 것, 주색을 엄격히 통제할 것, 그에 따르지 않으면 멸망으로 이어지리라는 것. 그러나 오히려 삼손의 몰락에 정신적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삼손의 막강한 힘은 객관적 견지에서 봤을 땐 핵 미사일과 같이 절대적 광분으로 비친다. 그러나 그것은 삼손 그 자체의 특성일 뿐 그의 본질적인 열정이라 할 수 없다. 삼손이 원수의 나라 여성을 사랑한 것에 신의 계시가 깃들어 있는 것이다. 사랑이란 그처럼 불신도 선과 악도 뛰어넘는 혁명적인 것이라는 의미다. 그러니 삼손을 나라를 지키지 못한 불명예스러운 인물로만 격하한다면 이 신화를, 더 나아가 신의 섭리를 제대로 깨우쳤다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신화를 현실의 축도로 가져와서 해석해 보자면 삼손에게 일종의 철저히 계산된 정치적 세력이 존재한다면 그러한 몰락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이 시대는 단순히 여자에 대한 사랑으로 추락하기엔 훨씬 냉정하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삼손의 몰락에 위대함이 깃들어 있다. 지금 이 시대 정치인들은 훨씬 추악하고 더러운 이유로 서로 물고 뜯고 싸우니까 말이다. 그러나 정치 얘기는 그만두자. 나는 그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니까.


이 신화에서 가장 서글픈 요소는 델릴라라는 여인이 진실한 사랑에 빠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이는 이렇게 이어 진다. ‘인간의 삶은 사람이 없어서 외로운 것이 아니라 진실이 없어 외로운 것이라고.’ 삼손은 그녀에게 배신당하고 블레셋 사람들에 의해 눈을 실명당한 채 노예일을 하면서 얼마나 고단하고 고독했을까? 나는 요즘 노예 일을 하고 있는 삼손이 된 기분이다. 그러나 나에겐 오로지 그 상태만이 지속될 뿐이다. 삼손처럼 초인의 힘을 발휘해서 모든 것을 뒤엎어 버릴 만한 힘은 존재하지 않는다. 올해 들어서 나는 포기한 것이 몇 가지가 있다. 등단, 사람들과 소통 이 것 두 가지 다. 객관적 견지에선 내가 포기를 자처한 초라한 인간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나는 흡사 히터를 숨이 막힐 정도로 틀어 놓고 어딘가로 화물차를 몰고 가는 삶을 사는 기분이다. 그 차는 딱히 좌석이 없어서 누군가 옆에 타기도 힘들다. 숨이 막히면 틈을 살짝 열고 신선한 공기를 잠깐 들이켜고… 그저 고요히, 아주 고요히 나의 길을 운전해서 갈 뿐이다. 외적으로 누군가와 소통하고 나를 알리는 것보다 이것이 결국 나의 창조적 목적과 부합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니까 나는 노예이면서도 초인이고 초인이면서도 노예인 것이다.

노예가 되어 맷돌을 돌리는 삼손
루비스 코린트 눈 먼 삼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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