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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 YI NA Aug 02. 2023

리코리쉬 피자 2022

비평



테시가하라 히로시의 영화 <타인의 얼굴>은 아베 코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이다. <타인의 얼굴>은 실존주의의 이름표를 달고 작가인 아베 코보에게 '고향 상실자 ''전통을 단절한 작가', '아방가르드'등의 별명을 붙여주었지만, 정작 그의 소설 <타인의 얼굴>은 기존의 자연적,혈연적 공동체를 이탈하여 생성된 '대도시'가 과거를 소거하기에 좋은 공간이며, 자신을 감출 수 있는 익명성이 획득되는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얼굴을 상실한 주인공이 가면으로 다른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다고 믿었을 때, 얼굴과 관계 없이 주인공을 알아보는 정신병자 소녀와 아내를 통해 시각으로만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한 채 그것이 인간의 본질 혹은 실존이라고 믿는 사람들을 비판하고자 했다.

아베 코보의 소설처럼, ' 대도시'는 과거를 소거하기에 좋은 공간이며, 그 공간에서 자신을 감출 수 있는 익명성을 획득하는 공간이자, 전통과 단절된 아방가르드적인 공간이었을까? 폴 토마스 앤더슨은 '산 페르난도 벨리'에서 일어난 개리와 알리나의 이야기 <리코리쉬 피자>를 통해 대도시의 '문화적 헤게모니'가 고향으로 대변되는 공동체 질서를 형성하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리코리쉬 피자>는 대도시 '산 페르난도 벨리'에 정착한 2세대들의 이야기이다. 개리의 부모는 자연적.혈연적 공동체보다 자본주의적 이데올로기에 심취해 일본인 아내를 둔 사업가를 차별하지 않고 손님으로 대우하고, 매니저를 자처해 전국을 떠돌며 아역배우인 개리의 성공을 도울 만큼 헌신적인 부모인 반면, 알리나의 부모는 기존의 자연적, 혈연적 공동체인 유대인의 민족 이데올로기에 심취해 자유를 억압하는 보수적인 부모로 그려진다.

개리의 부모와 알리나의 부모는 기존의 공동체를 이탈하여 대도시의 주민이 된 1세대로서, 본질 혹은 실존에 가까워 지기 위해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키며 자본주의적 이데올로기와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를 숭배했던 것이 아닌, 대도시의 '익명성'으로 비유되는 '이데올로기'에 매몰된 사람들인것이다. 우리가 <리코리쉬 피자>를 보며 '산 페르난도 벨리'의 사람들이 무엇을 위해 사는지 알 수 없었던 것처럼, 아베 코보의 소설 속 '도시의 익명성'과 산 페르난도 벨리의 '이데올로기 매몰 현상'은 인간의 본질과 실존을 감추고 억압하는 수단으로 이용된다는 점에서 유사한 것이라 볼 수있다.

<리코리쉬 피자>의 주인공인 개리와 알리나는 부모가 지닌 60~70년대 미국의 이데올로기에 일정부분 동의하며, 그들을 둘러 싼 68혁명의 이데올로기를 답습해가는 과정에서 '문화적 헤게모니'가 형성된다는 것을 증명한다. 알리나는 무신론자 남자친구를 집안의 종교행사에 데려와 유대인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항해보지만, 결국 남자친구에게 할례의식에 대한 설명을 곁들이며 부모 세대의 유대인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이게 되었고, 알리나의 보수적 남성성에 대한 동경 역시 부모 세대의 이데올로기를 알리나가 답습해가는 과정에서 얻어진 '문화적 헤게모니'의 부산물인 것이다.


 개리는 부모 세대의 자본주의적 이데올로기에 동의해 자신의 어리숙함을 반성하고, 진정한 성인으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 없이 퇴폐적인 물침대 사업 정보의 우위를 점한 핀볼 사업에 도전했고, 이는 자본주의적 이데올로기의 영향 아래 엉성하고 어리숙해 되려 도덕에 메이지 않는 개리의 기회주의적인 사업가 정체성을 쌓아올리는 원동력이 된다.


이러한 문화적 헤게모니 현상은 도시의 익명성처럼 그들의 본질 혹은 실존에 대해 명확한 설명을 해줄 수 없다는 한계를 지녔지만, 자신과 부모세대를 다른 존재
로 인식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익명성의 층위가 형성됨을 증명한다.

아베 코보의 소설 속에서 인간 소외의 원인은 익명성의 층위가 분절되지 않은 채, 모두가 동일한 익명성 속에 갖혀 인간 상호간의 관계성을 잃어가는 것이라 보았지만, <리코리쉬 피자>의 등장인물들은 문화적 헤게모니 속에서 남들과 차별화된 자신만의 익명성을 형성했고, 시각, 청각, 촉각, 미각, 후각 등의 오감을 통해 인간 상호간의 관계성을 느껴가며 소통을 갈구하는 인간성을 보여준 것이다.

이는 <타인의 얼굴>속 아내가 주인공을 비판하는 논리와 같다.
"사랑이라는 것은 서로 가면 벗기기를 하는 것이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가면을 뒤집어쓸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겁니다. 가면을 벗겨낼 즐거움이 없는 셈이니까요. 알겠습니까 이 뜻을."

"당신은 가면과 타인이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거울입니다. 어떤 타인도 당신에게는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니까."

"그런 거울 속 사막 같은 곳으로 나는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평생이 걸려도 소화해낼 수 없는 우롱으로 내 내장은 터져버릴 지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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