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IM YI NA Aug 22. 2023

백치 짓을 해야만 하는 이유

라스폰트리에 백치들 2000



카렌은 아들을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뒤, 식당에서 혼자 음식을 고르다가 백치 행위를 하는 무리를 발견한다. 그 무리 중에서 스토퍼라는 남자가 카렌을 마음에 들어했다. 카렌 또한 이 모임에 이끌리듯이 합류하게 된다.


서사 초입 부에 그 백치 모임 사람들을 상대로 인터뷰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사람들이 카렌에 대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알 수가 없어요. 하지만 착한 사람인 것은 분명해요. 아주 비밀스런 여인이지요."


라고 언급한다. 그녀에 대한 타인의 시각으로부터 유추해볼 수 있는 것이 그녀 다른 모임 사람들이 무작정 백치 행위를 하는 것과는 다르게 쉽사리 백치가 될 수 없는 것은, 백치에 대한 경계심이라기 보단, 오히려 진실로 백치가 되고 싶어하는 강렬한 욕구가 잠재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다른 이들은 자신의 사회적 권위와 페르소나에 지쳐서, 가학적 다른 페르소나의 형성을 목적을 위해서라면, 그녀는 자신의 삶에 은밀히 내재되어 있는 파괴적 비극성이 백치라는 가학성과 그 크기가 맞먹기 때문에, 놀이로서 받아들이기를 주저하는 비밀스런 심리를 감추고 있는 여인인 것이다.


그러나 서사에선 쉽사리 그녀의 심리를 보여주지 않는다. 다른 인물들이 어떻게 하나 둘 이 백치의 행위에서 떠나게 되는지, 인간의 나약한 이중성부터 보여준다. 모임중에 불륜 커플은 백치 짓을 일삼다가 현실에까지 백치 짓이 타격을 주게 되니, 결국 가정이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인 것 같다며 떠나버린다. 의사도 막상 실제 사람들 앞에서 바보인 것처럼 굴려고 하니까, 자신의 위선적 자아가 그걸 막았다. 그래서 그도 백치가 되는 것에 실패한다. 다른 대부분의 인물들도 대난교 섹스파티를 즐기면서도 자유보다는 수치심 때문에 괴로워 한다. 모임의 포주라 할 수 있는 스토퍼는 자기가 백치가되고 싶은 마음은 없었으며, 사람들을 데리고 즐기고자 했던 것이었는데, 모임이 파토가 나면서 재미를 잃어간다.


이 영화가 고귀하고 매력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다른 이들이 누구나 역겹다 할 만한 백치 행위에서 도망갔을 때, 오로지 카렌만이 비극에 성공한다는 것을 아주 처절하게 보여준다. 아들을 잃고도 가족들에게 외면 당했던 카렌은 모임이 파토가 나고, 자신만은 백치가 되어보이겠다며 집으로 가서 남편 앞에서 백치 짓을 한다. 그녀는 남편에게 구타를 당한다. 카렌의 얼굴은 슬프기만 하다. 그러나 오히려 이토록 비극적이고 슬퍼서 아름다운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백치 짓을 비난하거나 도망친 사람들이 평범한 인간일 뿐이라면, 카렌은 오히려 철두철미하게 자신의 삶의 비극을 몸소 들여다 본 정열적 혼을 가진 여성인 것이었던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겨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