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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 May 22. 2022

인간은 정신적 존재다

결핍과 풍요, 부끄러움

 

 인간은 정신적 존재다. 그래서 이 세상을 바라보며

 생각하고, 누군가를 사랑한다. 그 사유와 사랑의 행위는 계속해서 자신 안에 존재하는 결핍을 채우기 위함이다.

그렇기에 정신은 스펙타클하다. 결핍과 풍요, 스펙트럼을 오가기에. 어제는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러 갔다. 더 연장할 수 있는 책이었는데, 누군가 예약 신청을 해놓으면 연장이 불가하다. 빌릴 때마다 누군가 예약한다. 이런 책은 사실 처음이었다. 그 책의 이름은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 학술서로 인기가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실제 경험해보니 벌에 쫓기듯 빌리고 나면 마음이 급해진다. 빌리는 나도, 예약 신청을 하는 그 누군가도 정신적 결핍(지적 감수성도 포함)을 채우기 위한 것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이 조차도 투쟁이다. 그래서 나는 도서관에 가면 설렌다. 나의 정신이 결핍과 풍요 사이에서 요동치는 것을 느끼기에.


빌렸던 책을 반납하자마자 '사르트르vs카뮈' 라는 책부터 찾았다. 두 사상가가 어떠한 이유로 멀어지게 된 것인지 너무도 알고 싶었다. 사르트르는 파리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냉철한 지식인이고, 카뮈는 알제리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사르트르는 도시, 카뮈는 바다를 바라보며 자랐다. 정확히 틀어진 이유를 파악해서 나의 삶에도 적용시켜 보고픈 욕구가 드는 것 같다. 나는 매순간 세상의 것들에 의해 이별의 기억에 사로잡힌다. 시를 쓰듯이 감상에 빠지는 것은 아니다. 늘 나의 삶에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별의 얼굴을 한 세계가 나를 잠식시킨다. 그 무서운 세계에 잠식 될 때, 다자이 오사무 소설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부끄럼 많은 생을 보냈습니다.' 그 참을 수 없는 부끄러움을 사상가들의 이야기를 거울삼아 비평해보고픈 것이다. 그렇다고 비겁하게 부끄러움에서 벗어나려 하는 목적은 아니다. 생을 살아가는 것 자체가 부끄러움인데 그것을 부인하려 한다면, 나 자신의 개성만이 침식 당하는 일이 될 뿐이다.


이번에 빌린 책들은 예약신청이 들어올 만한 책들이 아니다. 혼자서 편하게 정신을 애무하고 있는 안위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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