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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 May 25. 2022

문학을 한다는 것은 타인과 어색해지는 일

sns를 중단한 이유

 

  다자이 오사무는 중학생 시절 부터 가슴속에 외로움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늘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라는 초조함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는 어떤 일에 대해서도 만족하기 어려웠고 그로인해 공허했다. 이는 다자이 오사무 자서전에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


“내게는 열 겹, 스무 겹의 가면이 들러붙어 있었기에 어느 것이 얼마나 슬픈 것인지 끝내 밝혀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 나는 마침내 어떤 쓸쓸한 분출구를 찾았다. 창작이었다. (중략) 작가가 되자, 작가가 되자 라고 나는 남몰래 소망했다. “


그리고 이후 그는 친구 대여섯 명을 모아 동인잡지를 창설한다.


“이 잡지는 그로부터 1년 정도 계속되었는데 나는 그것 때문에 큰형과 어색한 관계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큰형은 내가 문학에 열광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 걱정되었는지 고향에서 장문의 편지를 보내왔다. 화학에는 방정식이 있고 기하에는 정리가 있어서 그것을 이해하는 완전한 열쇠가 주어져 있으나 문학에는 그것이 없단다. 일정한 나이, 환경에 도달하지 못하면 문학을 정당하게 파악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란다, 라고 딱딱한 어조로 적혀 있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자신을 그것을 허락받은 인간이라고 믿었다.”


이 글을 읽고 다자이 오사무가 참으로 부러웠다. 가족 중에 문학의 본성에 대해 알고 이런 걱정을 해주는 이가 존재한다는 것이. 나에게도 걱정해주는 분이 있었다. 아빠는 어릴 적 부터 책에 너무도 빠져 있는 나를 걱정하셨다. 다자이 오사무 큰형과는 다른 의미에서의 걱정이었다. 문학에 심취함으로 인해 세상과 점점 동떨어지고, 사람들을 싫어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 사람들이란 특히 기성세대를 말하는 듯 했다. 그 당시에 어린왕자를 읽고 있었는데 그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스무살이 넘어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걱정을 되새겨보면 꽤 적중할 만한 말이어서 신기함을 느끼곤 했다.


그렇다. 문학은 세상에 아주 밀도있게 가까워지는 듯 하면서도 다시 멀어진다. 그리고 문학은 물질적 쾌락을 추구하는 보통의 사람들과 친해지지 못 하게 한다. 문학이란 것 자체가 정신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일이니까. 그리고 내 생각에 문학에서 오는 진정한 정신적 가치란 지적인 것을 단순히 체득하는 것이 아니라 ‘투기적’ (현재를 초월하여 미래에로 자신을 내던지는 실존 방식) 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읽고 습득하는 것은 학습에 불과하다. 그리고 단순한 습득에서 나와 쓰여진 글은 아무리 포장(지적으로,묘사적으로) 이 잘 되어 있다 하더라도 힘을 느낄 수가 없다. 차라리 겉으로 투박하더라도 자신의 진실한 체험이 극적으로 다가오는 글이 훨씬 훌륭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항상 그러한 글만을 써왔다. 진실하고 자기 고백적인 글. 이것은 어쩌면 가장 큰 장점이 될 수 있으면서 치명적 악이 될 수 있는 소지를 갖고 있다. 삶에 대한 집요한 사색과 분노가 녹아있어 살아있는 글이라 할 수 있지만, 그 생기를 제대로 이해할 만한 타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sns를잠시 중단했다. 아는 지인들이 나의 글들은 보기 시작하면서 그들과 어색해지는 것을 느낀다. 정말 체계적이고 명료하게 포장된 글이었다면 이렇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런 죽어있는 글은 쓸 수가 없는 사람이고 쓰고 싶지도 않다. sns라는 게 일종의 사회관계망 서비스라고 하는 것인데 내가 착각했던 것 같다. 그 가상공간에서도  가상의 가면을 써야 한다는 것을. 그 중엔 분명 나의 글을 좋아라 해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지인은 아니다. 가끔씩 그 사람이 올리는 시 구절이 좋았다. 이렇게 좋은 영향을 받는 측면도 있긴 하다. 이런 분들 때문에라도 언제가 다시 접속은 하긴 할 것이다. 특히 그 분이 전혜린 수필이 한 구절을 올려준 것이 가슴에 계속 아리게 남아 있다.

“거리만이 그리움을 낳는 건 아니다. 아무리 네가 가까이 있어도 너는 충분히, 실컷 가깝지 않았다. 더욱 더욱 가깝게, 거리만이 아니라 모든 게 의식까지도 가깝게 가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움은.”


‘이 모든 괴로움’을 또 다시 중에서  


스타벅스 커피 기프티콘 보다 립스틱 선물받는 것보다 이렇게 가슴에 남아버리는 글의 구절로 나의 존재가 채워지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다자이 오사무의 말을 빌려 얘기하자면, 나 또한 문학을 사랑하고 느끼는 것에 '허락 받은 자' 로 태어나서 행복하다. 다시 태어나도 이 인생을 살아보고 싶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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