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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 YI NA Aug 25. 2023

7월 17일

피리어드와 하이픈


1년의 절반은 조금 넘게 지나간 7월이다. 나무 사이 사이마다 숨어서 메아리쳐 증폭되어가는 매미소리도 점차 녹이 슬어간다. 한심하게도 일을 하다가 실수를 하고 말았다. 언제나 철저히 하려 해도, 꼭 하나라도 빈 틈이 생긴다. 같이 일하는 그 늙은 여자는 내가 상사 앞에서 민망해지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그 분이 담배를 다 피고 들어오는 때에 맞춰, 나를 질타하고 한 숨을 쉬었다. 이후로 한동안 고개를 제대로 들고 다니질 못 했다. 삶을 향한 어두운 은유들이 내안에 침잠의 영역을 자꾸만 넓혀갔다.


그런데, 그 남자는 머리채를 끌어당기듯이, 터프하게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 밥은 제대로 먹는 거니? 요즘 얼굴이 왜 그러냐"


" 네..  괜찮아요. 신경쓰지마세요."


어차피 사회생활의 일환으로써 묻는 질문에는 개인의 감정적 영역을 침범하지 말라는 간단한 말 한마디면, 대부분의 상황은 깊어질 필요가 없이 종결된다. 그런데 의외로 그 남자는 거기서 물러서지 않았다.


" 얼마전에 그 일 때문에 그런거지? "


그 분의 태도는 꽤나 도전적이었다. 그남자는 늙었지만, 매우 늙었지만, 자기 내면안에 존재하는 야생적이고 도전적인 의식으로, 자신에 비해 젊고 폐쇄적인 나의 불신의 영역에 어떻게든 들어가야 겠다는 초조함이 보였다.


" 제 실수였고, 혼날 만한 일에 혼났을 뿐이에요. "


" 내 앞에서 고개 숙이고 다닐 필요없어. 일 잘하는 것보다 중요한 게 뭔지 알아? 다른 사람의 감정 앞에서 침착하게 견디는 일이야. 그런 사람이야말로 미덕을 갖춘 사람이지. 나는 오히려 이나가 훌륭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  


지금까지 살면서 나에게 이렇게 말해준 사람은 없었다. 그것은 그 어떤 철학도, 형이상학에서도 느껴본 적 없는 생의 자유가 묻어나있었다.


나는 말했다.


"알겠습니다. 고개 들고 다닐께요. 걱정 끼쳐서 미안했요..."


그러자, 우울하고 차가웠던 그 남자의 얼굴에서 늦봄처럼 조금은 슬프면서도 환한 웃음이 떠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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