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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 YI NA Oct 01. 2023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박형준

시 비평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박형준

그 젊은이는 맨방바닥에서 잠을 잤다
창문으로 사과나무의 꼭대기만 보였다

가을에 간신히 작은 열매가 맺혔다
그 젊은이에게 그렇게 사랑이 찾아왔다

그녀가 지나가는 말로 허리가 아프다고 했다
그는 그때까지 맨방바닥에서 사랑을 나눴다

지하방의 창문으로 때 이른 낙과가 지나갔다
하지만 그 젊은이는 여자를 기다렸다

그녀의 옷에 묻은 찬 냄새를 기억하며
그 젊은이는 가을밤에 맨방바닥에서 잤다
서리가 입속에서 부서지는 날들이 지나갔다

창틀에 낙과가 쌓인 어느 날
물론 그 여자가 왔다 그 젊은이는 그때까지
사두고 한 번도 깔지 않은 요를 깔았다
지하방을 가득 채우는 요의 끝을 만지며
그 젊은이는 천진하게 여자에게 웃었다

맨방바닥에 꽃무늬 요가 펴졌다 생생한 요의 그림자가
여자는 그 젊은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사과나무의 꼭대기,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사과나무 꼭대기와 맨방바닥은 서로 높이의 측면에서 극단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오히려 그 극단성에서 공유되고 있는 애처로움이기에, 우리의 심상을 더욱 자극한다. 사과나무 꼭대기는 가장 높은 곳이지만, 열매가 맺히지 않는 공허가 존재하기에, 사실 맨방바닥이라는 소재의 배후에 은유적으로 존재한다. 이 문학적 신비로움으로 하여금, 이 시는 사랑이 없는 공허했던 기억을 아주 자연스럽게 꺼내게 만든다. 그리고 "간신히" 라는 표현을 통해, 진정한 사랑이란 돈없이 가난한 거지가 돈을 갈구하는 것 처럼, 찾아오기가 매우 힘겹다라는 것을 보여주면서, 마음 한켠에 외면하듯 존재하던 외로움을 무의식에서 떠오르게 한다. 그러나 이 시는 그 수면위로 떠오른 외로움으로 인해 우리를 열등하게 만들거나, 괴롭게 만들지 않는다.


시의 화자가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고 표현한 것 처럼, 사실 우리가 그 삶의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 때문에 이불을 적시고 싶을 만큼 눈물을 흘리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이 시는 말한다.


마지막에 꽃무늬 요를 보고도 돌아온 여자가 함께 웃지 않고 물끄러미 바라본 다는 것은, 오히려 시 속에 가난한 청년이 베푸는 이 사랑이 완벽한 결실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어린아이처럼 직감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히려 이불을 펼치는 청년의 천진한 웃음에 씁쓸함이 섞여있는 것이다. 여자는 정확히 그것을 씁쓸함이라고 감지는 못 하면서도, 알게 모르게 본능적으로 함께 웃을 수 없음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 엇갈림때문에 이 시는 더 슬프다.


그래서 꽃무늬 요를 깔고 사랑하는 여인을 곁에 두고서도, 사과나무 꼭대기를 바라보고 슬픈 건, 영원히 미해결로 남아있는 가슴속의 공허를 상징하기에, 이 시는 단순히 연애시를 넘어서, 인간의 감정의 끝에 맞닿은 진리를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시는 슬프고 아름답고 숭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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