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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 YI NA Nov 11. 2023

수평적 사이


수평적 사이  

처음에 나는 그녀를 싫어했지
밤을 같이 보내고 나서 하얀 침대에 남은
그녀의 몸 자국 마저 보기 싫었으니까
누르스름하고 낡은 침대는
우리가 함께 눕는 순간
살아있던 몸을 죽은 시체처럼
만들어 갔다

나는 매사에 불평이 많았고
그녀는 조금의 불평도
한 적이 없었다  

불면증 때문에 술에 취해
쓰라린 위를 끌어안고 잠 못 드는 밤
그녀는 내 배가 마치
우주의 중심이라도 된 듯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었다   

내 몸에 너의 손목이 닿을 때마다
나는 너에게 물었지

너의 맥박은 누구를 위해 뛰는 것이냐며
그러면 그녀는 부끄러운 듯 손목마저
손으로 감추고 수줍게 웃고는 했다

나는 추하고 털이 많은 사람임에도
너는 나에게 매끈거리는 몸으로
아낌없이 사랑을 주었지  

너는 나에게 오래된 고독이었고
수직으로 투하하고 싶은
깊고 깊은 우물이었다

우리 이제 침대로 올라가자
낡을 대로 낡아버린
저 애증의 침대로

우린 누워있을 때 서로 가장
완벽하게 닮은 사이였고
가장 솔직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일산화탄소처럼 퍼져나가는
당신의 숨결에도 나는 영원히
수평으로 누워있을 수 있었다


11 11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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