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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 YI NA Mar 10. 2024

사실은 당신이 바보 같아서 좋았어

  


어제 토요일, 그동안 마음에 짐이었던 일을 마무리하고 나니, 여유가 생겼다.

그것 때문에 그간 문학책도 못 읽고 일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를 못 해서 사실 근래에 올렸던 글들이

영양가가 없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도 짧게나마 일상 속에서 부단히 나의 내면의 목소리를 잃지 않으려

애썼던 것 같다.


늦게 눈 뜨자마자 도스토예프스키

자유를 찾으면 가장 먼저 읽고 싶었던 책이 무엇일까 늘 생각했는데, 일요일 아침 떠오르는 책이  '백치'였다.

암막커튼 칙고 방을 어둡게 만든 다음, 와인을 반 병정도 마셔가며 독서를 했다. 눈에 띄는 구절이 "그가 세계문학 속 인물 중에서 돈키호테를 가장 아름답다고 여겼다."  라는 부분이었다. 왜일까? 읽던 책을 두고 만취한 채로 돈키호테 소설을 읽었다. 그리고 다 읽은 다음에 뭐 이런 미친놈이 다 있지 이런 생각을 하다가 쓰러져서 잠이 들었다.

그리고 오후, 잠이 깨서 정신 차린 다음 아메리카노 한 잔...



돈키호테는 스페인 문학이다. 그 당시 집필 했을 때 1000페이지에 가까운 엄청난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지금으로 치자면 베스트셀러 였던 것이다. 그 때 사람들은 넷플릭스나 온라인 게임, 미디어 같은 것들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학과 철학 책을 읽는 것이 일종의 쾌락이자 게임으로 여겨졌던 것 같다.


돈키호테는 굉장히 망상적이고 무모한 인물이다.


혼자 방구석에서 기사도 소설을 읽다가, 나도 사람들을 지켜주는 유능한 기사가 되어야 겠다는 급진적 야망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는 집에 있는 낡은 투구, 갑옷을 닦고 마굿간에 있는 늙고 마른 말을 타고 모험을 시작한다.


기사소설을 읽고 있으니 그 이야기가 마치 자신의 이야기 인 것 처럼 판단력을 잃고 몰입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의 야먕은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마을의 풍차를 거인으로 착각하고 부수기를 했고, 양치기 소년이 돌보고 있는 양떼들을 자신의 적이라 여기고 내쫒았다. 적들이 양으로 둔갑한 것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그리고 또 어느 주막에 머물게 되었는데 거기 있는 와인 술 주머니를 칼로 사정없이 찔러서 술이 집안에 흘러넘쳐서 쫓겨났다. 쫓겨난 후에 마리아 동상을 옮기며 기우제를 준비하는 사람들까지 공격했다. 마리아 동상을 살아있는 여인이라 착각하고 자유롭게 해주라며 난리를 친 것이다. 이에 다수의 사람들에게 몰매를 맞고 그는 이제 모험을 마치겠다며 집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인상적이었던 것은 돈키호테가  집으로 돌아가서 가족들이 그 이상한 기사소설 때문에 사람이 망가졌다며 한탄하는데, 그는 여젼히 자신의 야망을 꿈처럼 간직하며 평온하게 잠이 든다...


돈키호테는 완전한 은둔자의 유형에 속하는 인물이다. 현실의 세속적인 인간의 부류와 대비되는 철학적인 인간. 철학은 공상적이며, 현실과 대립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이 소설은 상징하고 있다.


고독한 철학자가 현실의 세계에서 증오의 대상이 되듯이, 돈키호테는 그러한 양상을 몸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부분이 참 인상이 깊은 데, 그가 결국 후회하지 않는 절망의 모습으로 소설이 끝마치지 않았기에 이 소설이 의미가 생긴다고 볼 수 있다.


철학과 문학이라는, 현실이 침입할 수 없는 피난처를 그가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돈키호테처럼 고독한 사람들은 그런 피난처에 숨는다.


그렇게 도스토예프스키는 돈키호테를 매우 진지한 유형의 인물이라 여겼다고 한다.


그가 돈키호테에게서 느꼈던 진지함이란 무엇일까..


세속의 인간들이 자만과 허영, 탐욕으로 얼룩진 영혼을 지녔다면, 돈키호테는 단순하고 청순한 영혼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그를 멍청하고 피해를 주는 인간으로 폄하하지만, 그의 의도를 보자면 단지 순수하고 인간적인 매력을 지닌 것이다. 이는 그가 쓴 소설 '백치'와 어느 정도 상응한다고 해석될 수 있다.


이 소설은 얼핏 보기엔 현실감각이 떨어지는 돈키호테를 풍자하는 것 처럼 보이지만 실은 인간의 순수한 영혼을 들여다 보지 못 하는, 깊고 암울한 심연 같은 현실 속을 부유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에 있는 것이다.


마지막 까지 망상을 평온하게 안고 잠들 수 있는 그를 보며 느낀다.


오히려 그가 세상의 허위와 위선에 반항하며 싸운 것이며, 세속적 현실에의 절규를 실현해보였다는 것을.


도스토예프스키가 그토록 아름답다고 느끼는 그의 극도의 순수성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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