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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 Jun 01. 2022

영화 체리향기 리뷰(1998)

압바스키아로스타미 감독


두 번을 보고 한 3일은 고민한 영화다. 그만큼 내게 무거우면서도 난해한 영화였다. 난해하다는 것이 이해하지 못했을 때 느끼는 투정 같은 것이라면, 이 영화 앞에서 나는 어린 아이였던 것이 분명하다. 죽음에 대한 통찰이 부족한 어린 아이. 영화의 화두는 '죽음'이다. 죽고 싶어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 이유는 드러나지 않는다. 그게 무척 궁금하기도 했지만, 차라리 이유가 드러나지 않은 편이 더 나은거라는 생각도 했다. 만약 이유가 드러난다면, 우리는 그가 죽으려는 의지에 대해 잣대를 가져다 댔을 것이다. 사실, 이유가 어떻던 간에 그 누가 그 죽음은 아깝다, 죽을만 하다, 결론 지을 수 있을까...


그는 자신의 죽음을 의뢰하기 위해 세 남자를 차에 태우고 대화를 나누게 된다. 거기서 대화 장면이 클로즈 업 되서 보여지는데, 그들 각자의 삶이 보여진다. 그런데 첫 번째로 차에 탄 군인의 삶도 두 번째에 신학생도 그리 상황이 좋지 못했다. 무엇보다 타인의 죽음을 떠맡기를 두려워했다.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하여도 거절했다. 군인은 그런 짓은 할 수 없다는 윤리적 근거를 댔고, 신학생은 신이 주신 생명은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는 신앙심에 의해서였다. 윤리, 신앙 참 고귀하다. 하지만 어디, 인간 또한 그런가... 그들은 도망치고 싶었던 것이다. 자기 삶에 오점을 남기지 않기 위해. 그렇게 남의 죽음을 끝까지 책임진 다는 것은 특별한 감정이 필요한 것이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감정이고, 그럴 만큼 냉혹한 영혼을 지닌 사람도 만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런데 세번째 노인은 흔쾌히 허락했다. 노인 또한 죽고싶었던 적이 있기에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죽음을 도와준다면서도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윤리? 신앙심과는 또 다른 체리향기. 체리향기가 얼마나 달콤한지 아느냐. 죽으려는 순간 그 향기를 맡고 살고 싶어졌다는 노인의 이야기. 왠일인지 남자는 노인이 가자는 길을 따라 운전하면서 행복해보인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가 노인의 체리향기를 맡고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찾은 것처럼 보이지만, 감독은 결코 거기서 쉽게 끝나지 않는다.


남자는 다시 자신이 죽으려던 장소로 급히 차를 몰고 간다. 비 내리고 천둥이 치는 가운데 남자의 비장한 표정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남자는 죽었을까? 결말은 아무도 모르지만 나는 죽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남자가 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러고도 좋아요?" 노인이 새를 박제하는 것을 보고 한 말이다. 분명 노인의 이야기에는 감동을 받았지만 그것과는 다른 노인의 진짜 삶을 보고 실망을 느낀 것이다. 그 실망이란 죽음에 대해 초연한 노인의 태도가 낭만적인 체리향기와는 대조적으로 느껴져서 일 것이다. 그리고 체리향기가 그렇게 달콤했다면 역설적으로 우리는 진정으로 죽을 수 있어야 한다. 미래의 삶을 두려워 하는 것이 인간의 본질이고, 순간적 쾌락(좋음)을 놓치지 않으려 하는 것 또한 인간이니까. 긴 삶을 순간으로 느끼기에 삶은 길고 불행해지리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지 않았을까. 그렇기에 이 영화에서 체리향기란, 나는 모순이라 감히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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