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실 예브게니 이를네프가 자살을 저지를 당시 정신병자였다면,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정신병자여야 했다. 진짜 정신병자는 다른 이들에게서 광기의 징후를 보면서 자신에게서는 그것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모두에게 촉망받는 귀족집안 태생의 예브게니는 자신에게 순종적이고 가정적인 아내를 두고, 스테파니다 라는 여자를 무거운 마음으로 사랑하게 된다. 처음에는 가벼운 유희거리로 시작한 관계였는데 이렇게까지 마음이 진지하게 전개될 줄 몰랐던 그는 일상 생활이 힘겨울 정도로 괴로워한다. 본래의 안정적이고 행복한 삶으로 돌아갈 수 없어져버린 그는 아내를 죽여버릴지, 이혼을 하고 모든 명예를 포기하고 그 여자와 살지, 아니면 그 여자를 죽일지 고민하다가 결국 스스로 자멸하고만다.
마지막 이 구절 하나로 이 작품은 바람이 난 예브게니가 여자에 대한 욕망 앞에서 해결책을 찾지 못 하고 자살했기에, 단순히 절제하지 못 하는 욕구는 불순하다, 여자는 남자를 파멸 시키는 악마 같은 존재, 라는 식의 도덕적 가르침에서 끝나지 않는다. (여기에 바로 톨스토이의 천재적 면모가 돋보인다. 욕망에 정신 차리지 못 했던 자신의 지난 삶을 회개하는, 도덕가인척 작품을 전개하나, 사실은 기존의 가치를 전복 시키려는 잠재된 예술가적 면모를 드러내며 반전을 일으킨다.)
예브게니가 여자에 대한 욕망에 힘겨워 하고, 그것을 다른 이들에게 막상 털어놓아도 그를 대하는 주변 사람들의 태도는 가벼웠다. 그 여자가 예쁘냐 혹은 단순히 가볍게 만나보라는 식의 태도들이었고 아무도 그가 여자를 진지하게 사랑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지 못 했다. 그의 불륜은 오직 그에게만이 심각한 것이며, 다른 이들의 시각에서는 가벼운 유희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진지하고 무거운 불륜을 감행하기에 그의 상황의 모든 것이 안정적이고 행복하기에 (아름답고 지고지순한 아내, 애초에 귀족 집안 태생 등등)
아무도 그가 그럴 것이라고 생각지를 못 했다. 또한 그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너무도 정직하고 착실한 청년이었다. 그렇게 점점 그는 아무에게도 그 자신에 대해 털어놓을 수가 없어졌다. 그 거짓된 상황은 쌓여가는 채무처럼 그를 힘들게 했다.
그런데 그가 타개하지 못한 것은 과연 그에게 주어진 사회적 상황이었을까. 상황이란 무엇인가. 허영이 투영된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허영이란 무엇인가? 자기 자신의 진정한 욕망이 아니라, 타인의 욕망이 투영된 그릇된 허상이다. 인간이 불행한 이유는 자기 자신의 욕망 때문에 괴로운 것이 아니라 타인의 욕망이 투영된 거짓된 삶을 타개할 수 없기에 불행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여자라는 존재가 악마인 것이 아니라 인간 개개인의 마음 속에 '악마' 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결국 그런 식으로 스스로를 파멸 시키고 마는ᆢ
오히려 이 작품은 자신이 진심으로 사랑했던 여자에게 결국 구원 받지 못 하고 죽었다는 사실에 비극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이 작품에서 여자는 오히려 구원자를 상징한다. 괴로운 인간을 구원해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진실한 사랑 뿐이리라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