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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 Jun 14. 2022

영화 온 세상이 하얗다

진지하지 않은 자살 로맨스


 한 남자(강길우배우)는 치매를 앓고 있어서 자꾸만 자신이 저지른 과오를 잊어버리고, 한 여자(박가영)는 자신에 대해 거짓말을 계속해서 한다. 이 두 사람의 두드러지는 특징덕에 자연스레 로맨스가 이어진다. 남자는 까먹기에 여자의 거짓말을 의구심없이 받아줄 수 있고, 거짓말을 하는 여자는 그런 자신의 거짓을 받아줄 수 있는 남자를 기피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우연히 만난 둘은 한 집에서 같이 잠을 자기도 하고 쇼핑도 한다. 그러다가 태백으로 가서 같이 자살할 결심을 한다는 것이 전체적인 줄거리다.

그런데 남자가 느끼는 삶에 대한 절망이 영화를 보는 이로 하여금  비극성을 느끼기에 충분치 않았다. 이유는 선택적인 잊어버림 때문이다. 명확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남자는 과거에 이모의 재산을 탕진했고, 지금 사는 집 마저 그의 집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는 그 집이 자기 집이라고 억지 주장을 펼친다. 보다못한 형이 때리려하고, 그도 폭력으로 대항하려고 하나 겁이 많은 나머지 굴복하고 만다. 그런데 어릴 적 어머니가 까마귀가 많은 숲에서 자살했다는 것만은 기억하고 본인도 그곳에서 죽기를 바란다. 그러나 매일 밧줄을 숨겨놓았다가 죽는 것은 잊어버린다. 자신 이외에 세계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고 하물며 죽고자하는 자신의 심연마저 못 받아들이는 자가 말하는 인생의 고통에 공감을 할 수 있을까? 이 남자는 자살에 대한 감상적인 생각에 매료되어 있다. 현실도피를 그러한 방식으로 택한 것이다. 그래서 여자는 죽기직전까지 그저 추우니까 얼른 죽고 싶다하지만, 남자는 글로 자신의 감상을 끝까지 남긴다. 이러한 모습이 그가 진정 고통스럽기보단 자살에 대한 감상에 빠져있다는 증거라 볼 수 있겠다.

그리고 마지막에 어떤 이가 자살하려고 목을 맨 순간, 남자가 먼저 달려가서 자살하려는 이를 살리려 하고 여자도 이에 동조한다. 그러고 나서 두 남녀는 실랑이가 오고 간다. 누가 먼저 달려갔냐는 것으로. 서로 먼저 달려갔다고 한다. 난 여기서 조금이라도 이 영화가 진지해지려면, 적어도 죽음이라는 가볍지 않은 것이 소재라면, 그 남자가 본인이 먼저 달려간거라고 인정하는 발언을 해야했지 않았나 싶었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죽고자하는 이를 살리듯이 실은 나도 나를 살리고 싶다 라고 진실을 토로하는 것이 관객들에게 감동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둘의 실랑이로 끝을 맺는다. 김지석 감독이 영화에서 살아있는 식물을 보여주고, 개에게 먹이를 주고, 얼린 물을 다시 새로운 물로 갈아주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무엇을 이야기 하려는지는 알겠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왜냐하면 제대로 된  비극에 빠져들어야지만이 틈새처럼 보이는 희극성을 감동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두 가지 다 하지 못했다. 어느 하나는 진지하지 못 했고, 어느 하나는 희미했다.


2022.02.12 더숲 아트시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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