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 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 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아 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웃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 한 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 , 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 본다.
윤동주 _ 병원
윤동주의 병원은,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하는 자아의 분열을 아름답게 표현한 작품입니다.. 살구나무 그늘 아래서 하얀 다리를 드러내놓고, 병원 뒤뜰에서 일광욕하는 모습은 그녀가 이 세상 존재가 아닌듯 천상의 존재처럼 형상화되고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이것은 병원에서 정상적으로 치료를 받는 모습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여자는 홀로 병원이라는 공간을 벗어나서 뒤뜰에서 일광욕을 하며, 고독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곁에는 찾아오는 이도 나비 한 마리 조차 없다고 표현되고 있습니다. 이는, 그녀의 고독을 더욱 극대화시켜주는 것과 동시에
그녀가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적 존재임을 부각시킵니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는, 실은 그녀의 고독이 현세에서 타자와 세계로 인해 느끼는 고독이 아니라, 오로지 순수하게 문학적 갈망을 향한 마음에서 나온 고독임을 상징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그녀의 흰 옷, 흰 다리, 하얗다는 두드러진 색채적 이미지가 주는 순수성이 뒷받침해줍니다.
그런데 나는 어떤 존재인가요? 늙은 의사는 내가 바꿀 수 없는 절대적, 세속적 현실을 상징합니다. 나의 현실은 그런 무미건조한 의사에게 진찰받고, 병명을 미궁속으로 빠뜨리는 무의미한 진찰 결과를 들을 수 밖에 없습니다. 아, 나는 이 지나친 현실의 시련에 화가 납니다. 그래도 나는 화를 내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왜일까요? 내가 그토록 천상의 존재처럼 여기는 그녀와 같이 순수하고, 세속을 이탈한 자아를 향해 나아가고 싶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바로 윤동주는 보통의 다른 썩어빠진 예술가가아닌, 성인을 닮은 진실된 예술가임을 증명해줍니다.
금잔화의 꽃말은 비애, 고통이라고 합니다. 그여자가 꽃을 안고 병실로 간다는 것은 세속의 세계에 다시 발을 들일지라도, 문학적 순수한 영혼의 고통을 잊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여자와 나의 건강이 낫기를 바란다는 것은 단순히 병이 낫길 바란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문학적 표상의 상징인 그여자를 닮고 싶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