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나이 드신 분들이 자신의 생활 지침이라며 종종 농담 삼아 말씀하시는 문장이다. 그런 말씀을 하시는 대선배가 있었는데, 대선배이자 어르신들의 구수한 이야기는 늘 즐거웠고 듣기 편했다. 신기하게도 이야기가 길어져도 그 시간이 싫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말에는 대화를 주도했다는 데에 대한 미안함과 듣는 이에 대한 배려가 녹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젊은 선배가 그 대선배를 두고 '꼰대'라 부르기 시작했고, 그 어르신이 시대에 맞지 않는 이야기를 한다며 뒤에서 이야기하곤 했다. 그때 난 왠지 모를 불편감을 느꼈다. 오히려 난 그 대선배보다는 선배를 더 꼰대처럼 느껴왔기 때문이다. 찝찝함이 남은 나머지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구도 직장에서 비슷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그렇다. 그들은 그토록 무섭다던 '젊은 꼰대'였다.
그렇다면 나 또한 누군가의 꼰대가 될 수 있는 것 아닌가? 친구와 나는 '꼰대'라 부를 수 있는 요소를 차근차근 정리해 추려보았다. 언제 상대방을 꼰대라 느끼는지 쭈르르 리스트를 적어보았다. 그리고 이 모든 사건들이 하나의 답으로 귀결되는 것을 알게 됐다. 결정적으로 상대를 불편하게 한다면 '꼰대'였다. 그런데 불편하다는 기준은 개개인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친구와 함께 불편함에 대해 다시 정리해 보았다. 공통점을 찾아보니 결국엔 '자신의 사고방식만이 옳다고 생각하며 타인에게 강요할 때' 가장 큰 불편함을 느꼈고, 그런 환경을 제공하는 사람을 꼰대라 생각했다.
상대의 생각을 받아들이고 나와 다름을 인정하면 된다. 어차피 세상은 변한다. 자연도 사람도 생각도 가치관도 모든지 시간이 흐르면 변할 수밖에 없다. 살아온 시대와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나보다 젊거나 나이 많은 사람들의 생각은 다를 수밖에 없다. 이 지구상에서 영원한 것이 얼마나 될까? 이렇게 영원한 것이 없는 세상 속에서 내 생각만을 강요하며 뚝딱거리는 게 부질없는 짓일 거라 생각됐다. 꼰대가 되지 않는 법은 변하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멋진 어른이면 되는 것 아닐까. 나는 내가 가진 마음의 잣대를 꺼내지 않기로 했다. 타인을 내가 가진 자로 이리저리 재며 평가하지 않고, 타인의 있는 그대로의 좋은 면을 보기로 했다.
그렇게 물 흐르듯 함께 흘러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