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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여행자 Aug 20. 2019

앰버와 그녀의 반려견 아우레아


승강장을 겨우 찾아 허겁지겁 기차에 오르니 한 중년 여성이 아인이를 지긋이 바라봤다. 아인이와 눈빛을 교환하며 교감을 하고 있었다. 대부분 이곳의 반려견과 다른 작은 모습에 이끌려 귀여워하는 정도였는데, 그녀는 마치 마음을 읽을 것만 같은 그윽한 눈빛으로 아인이를 바라봤다. 어머니의 장례식을 마친 뒤 여행을 떠나온 그녀의 이름은 앰버. 슬픔을 동물과의 교감을 통해 치유받기 위해 승마 여행을 떠나왔다고 했다. 앰버는 내가 여태 만난 사람들과 달랐다. 시간을 두고 지긋이 아인이를 바라보며 얼굴을 마주했는데, 아무런 대화 없이도 오로지 눈빛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아인이에게 털어놓고 아인이를 통해 치유받는 것 같았다. 아인이는 누군가가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면 긴장하곤 하는데, 그녀의 눈빛에 오히려 더 차분해지는 것 같았다. 정말 어떤 감정을 교류하는 것이었을까?      


문득 ‘스토리 독스Story Dogs’라는 호주의 독서 프로그램이 생각났다. ‘스토리 독스’는 자신감이 없거나 책 읽는 것을 어려워하는 아이가 치료견에게 책을 읽어주는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독서 프로그램인데, 아이들이 읽기능력을 향상시키고 자존감을 찾는 데 매우 효과적이라고 했다. 치료견은 아이들이 책을 읽을 때 실수를 해도 비판하지 않고 묵묵히 들어주기에 아이들이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고 했다. 앰버도 비슷한 교감을 나누는 것일까?      


그건 아마도 그녀가 한때 반려견의 보호자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다. 독일인인 그녀는 남아공에서 선생님으로 재직 중일 당시 키웠던 보더콜리 아우레아Aurea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우레아가 너무나 똑똑한 나머지 어디를 가도 목줄이 전혀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의젓해 영화관에도 자신의 수업에도 동행했다고 했다. 분위기를 읽을 줄 아는 아우레아는 조용해야 할 때 몸을 웅크리고 납작 엎드려 앉아 소리를 내지 않고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독일로 돌아오면서 아우레아와 작별을 해야만 했다. 그녀는 당시 아우레아가 배로 이동하기 힘들 것이라 생각했고, 독일에 온다면 이전의 삶에서 누렸던 자유로움과 드넓은 자연을 더 이상 즐기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우레아를 남아공에 남겨두고 왔다고 했다. 자연에서 뛰놀던 아우레아가 갑갑한 도시생활에 적응하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과 아우레아가 누리던 모든 것을 빼앗을 수 없다는 생각에 이별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아우레아는 최고의 반려견이었어요. 언제나 의젓하게 상황을 판단할 줄 알았고 언제나 차분했어요. 우아하게 걸을 때마다 윤기 나는 털이 찰랑였어요.” 그녀의 눈에는 아우레아와의 아름다운 추억이 가득히 빛났다. 그녀의 반려견 아우레아에 대한 찬사를 들으니 조지 고든 바이런의 <어느 개에게 바치는 비문>이 떠올랐다.     



"그는 아름다움을 가졌으나 허영심은 없었고, 힘을 가졌으나 오만하지 않았고, 용기를 가졌으나 잔인하지 않았고, 인간의 모든 미덕을 갖추었으나 악덕은 없었다."



티볼리에 다다를 무렵 우리는 연락처를 주고받았는데, 그때 갑자기 사람들의 탄성이 터졌다. 기차에서 바라본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절벽으로 폭포가 떨어지는 것이 보였고 오래된 도시가 눈앞에 펼쳐졌다. 마치 판타지 영화 속 한 장면을 보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나는 저 장관보다 지금 눈앞에 있는 앰버와 그녀의 반려견 아우레아에 더 마음이 쓰였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티볼리행 기차에서 만났던 앰버에게 연락이 왔다. 그녀는 반려견 아우레아에 대해 못다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며 이메일을 확인해보라고 했다. 앰버의 메일에는 아우레아에 대한 사랑과 죄책감이 담겨 있었다. 아우레아는 앰버가 남아공을 떠나자 집을 나가 자취를 감췄고 이후 누구도 아우레아를 보지 못했다고 한다. 예전에도 앰버가 여행을 다녀올 동안 아우레아를 지인에게 부탁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아우레아가 앰버를 찾으러 나가 집에서 10km나 떨어진 곳에서 발견된 적도 있었다고 했다. 앰버가 아우레아를 두고 남아공을 떠난 날, 그날도 아우레아는 자신을 찾아 나섰던 것이 틀림없다고 했다. 앰버의 마음속에서 아우레아는 지금까지도 그녀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그녀가 선물한 초원을 끊임없이 헤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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