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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여행자 Nov 16. 2020

 반려인과 혐오감

 무리 짓는 습성에 대해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들은 왜 외딴섬에 사는 사람들처럼 살아갈까?’

권력과 집단성에 대한 글을 읽다가 인간이 무리 지어 다니는 습성은 농경시대 이전부터 있었다는 부분을 보고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리 짓는 습성은 다른 동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사냥을 하기에 유리하도록 하는 데에서 출발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인간의 무리 짓는 습성이 농경시대에 끝난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현존하고 있죠. 집단은 집단에 속하지 않은 자들을 배척한다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힘이 없다고 느끼는 개인은 집단에 숨기도 하며, 그 안에서 목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집단은 세상 어딜 가든 존재합니다. 형태가 다를 뿐이죠. 한편  무리는  배척하는 특성이 있기에 외부인에게 위화감을 주기도 합니다.

무리의 속성은 집단 혐오감과도 연관 지어볼 수 있습니다. 싫어하는 대상을 보며 눈살을 찌푸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비슷한 사람들과 모여 마음속에 혐오감을 키워갑니다. 그리고 전해지는 한 가지의 케이스를 가지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을 정당화하기도 하며, 대중 속에 숨어 여론몰이를 합니다. 대개 혐오감에는 논리가 없습니다. 논리가 있다면 해결점을 제시했을 때 그 혐오가 끝이 나야 합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혐오라는 감정은 쉽게 끝나지 않는 질긴 감정입니다. 혐오하는 자들에게는 개인의 느낌이 가장 중요하며 논리가 없습니다. 논리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기에, 논리가 없는 이들은 종종 집단 속에서 주장을 펼칩니다. 무리에 들어가 주장을 펼치면 논리가 없어도 주장에 힘이 실립니다.


물론 논리적으로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대개 잘못이 있다면, 잘못한 이들에게 가서 개인적으로 잘못을 지적합니다. 개인일지라도 논리에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논리적인 이들은 쉽게 일반화하지 않습니다. 잘잘못을 제대로 따지는 이들은 혐오감과는 거리가 멉니다.

집 앞 공원에는 일정한 시각에 몇몇 중 대형견을 키우는 반려인들이 모입니다. 그런데 가끔 그곳을 지나다 보면 눈에 띄도록 반려견이 많이 모여 우려가 되기도 합니다. 그 무리가 다른 비 반려인의 눈엣가시가 될 수 있어 빨리 지나쳐 가려합니다.


물론 반려인들이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에 모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겠지만 개개인으로는 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반려견을 키우지 않는 분들은 잘 모르는 일이겠지만 대형견 보호자들이 반려견의 덩치가 크다는 이유로 근거 없이 질타를 받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죠.


그 반려견들은 사실 정말 순했습니다. 하지만 그 모임이 비 반려인들에게 위협으로 느껴져 다른 반려인들에게 혐오감이라는 화살로 되돌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왜 반려인이 무리 지으려 하는지, 왜 혐오하는 사람이 생기는지, 그리고 잘못한 것이 없는 반려인이 왜 배척당하는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누가 먼저 잘못했는가를 따지다 보면 기원전까지로 거슬러 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반려인의 잘못이 먼저든 혐오가 먼저든 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우선 서로를 배려하고 잘못이 있는 자에게만 책임을 묻는 것이 모두에게 정당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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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인이 비 반려인인 친구들과 만나 함께하는 풍경을 자주 보시는지요? 반려견을 키우면서 기존의 인간관계가 변화한 것을 느낀 적 있으신지요? 반려인은 반려인끼리, 비 반려인은 비 반려인끼리 모여 지내는 것에 더욱 익숙하지 않으신가요? 그런데...... 그보다는 서로 무리 지어 서로를 배척할 필요 없이 그저 자연스러운 공존을 이루며 지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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