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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여행자 Nov 30. 2020

거부당하는 장애인의 안내견

개를 혐오하는 감정이 장애인의 인권보다 중요한가요?

인스타그램 캡쳐


최근 한 마트의 직원이 교육 중인 안내견의 출입을 거부해 논란이 됐습니다. 안내견과 동행한 사람이 장애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라고는 하지만 합리적인 이유 없이 언성을 높이는 것은 규정이라기보다는 혐오감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반려인들이 늘 겪는 일과 별반 다를 바 없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보다 마음이 아팠던 것은 장애인의 권리가 혐오감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었습니다. 아무리 마트의 규정에 벗어나는 일이라도 한 인간으로서 ‘장애인의 인권’이라는 큰 틀을 왜 보지 못했던 것일까요? 인권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따스한 배려조차 없는 나라에서 우리는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요?

독일 연수 당시 저는 시내에서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을 참 많이 마주쳤습니다. 그 당시 저는 독일에 장애인이 참 많다고 생각했었는데, 실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장애인이 시내에 나올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고 사회 구성원도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협조적이었기 때문에 장애인이 집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 특히 도심에서 장애인은 쉽게 이동하기 어렵습니다. 장애인이 편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니죠. 그런데 사회 구성원조차도 이들을 배려하는 시선으로 보지 않는다면 이들은 집에만 머물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우리, 조금씩만 배려하면 안 될까요?

사실 반려인들은 이런 처우에 익숙합니다. 반려견과 동행했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거나 피해를 주지 않아도 폭언을 들을 때도 있습니다.

“개 키우는 것들은 민폐 끼치는 인간들이다”
“좁은 길을 막고 있다. 개 키우는 사람들이 먼저 비켜야지”
“집에나 처박혀 있을 것이지”

이렇게 반려인은 때로는 어떤 이들에게 2등 시민이 되어버리곤 합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이젠 너무나 익숙하니까요. 하지만 이러한 날카로운 말들이 사회적 보호를 받아야 할 장애인들에게는 절대 전달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SBS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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