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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여행자 Dec 27. 2020

<퀸스 갬빗>  어느 체스 여전사 이야기

- 체스는 스포츠인가?

“체스는 스포츠인가?”


  아마도 이 질문을 던진다면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스포츠를 떠올릴 때 몸의 움직임에 비중을 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체스가 스포츠에 해당된다는 사실이 생소하게 느껴질 수 도 있겠다. 오늘날 몸의 움직임이 현저히 적은 올림픽 종목들을 보면서 놀라는 이들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스포츠는 놀이에서 출발한 것이라는 관점과, 사냥과 전쟁 연습에서 출발했다고 보는 관점이 있다. 체스에는 몸의 움직임이 필요하지는 않지만 말의 특성을 이용해 상대편의 왕을 포위해 승리를 차지하는 전쟁게임이라는 점에서 스포츠로 볼 수 있다. 국제올림픽위원회는 체스를 스포츠로 인정하고 있고, 체스는 ‘마인드 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체스는 인간사의 거울이다”     


 체스는 오랜 전쟁의 역사를 써내려 온 인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체스는 가장 오래된 보드 게임이자 모의 전쟁 게임이며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규정 변화를 겪었다. 그중 주목할만한 것은 가장 약한 말이었던 ‘퀸’이 가장 강력한 말로 부상한 것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퀸스 갬빗>은 주인공 ‘베스 하먼’이 체스계의 ‘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그가 속한 체스 세계는 승리한 자만이 살아남는 오늘날의 차가운 자본주의 현실과 닮아있다. 베스 하먼은 이런 체스의 세계에 매료된다. 체스는 그녀에게 생활비를 제공해주며, 부를 축적할 기회를 준다. 그의 이름을 알려 천재로 불리게 해 준 것도 체스, 그녀를 낙담하게 만든 것도 체스, 그녀에게 용기를 준 것도 체스, 사랑, 우정을 가르쳐준 것도 체스,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도록 해 준 것도 체스다.

체스는 그녀 인생의 전부이며, 이 모든 것을 통해 ‘퀸’으로 성장하는 그녀의 인생도 체스게임과 같다.        

        


“약물을 남용해 얻은 승리”     


  도핑은 스포츠 세계에서 언제나 문제가 된다. 스포츠 선수들은 더 빨리 근육을 키워 몸을 만들고 부상으로부터 빨리 회복하기 위해 금지된 약물에 손을 대 건강을 해치며 올림픽 정신을 해치기도 한다. 약물을 이용해 거머쥔 승리에 의해 스포츠는 부정행위로 더럽혀지기도 한다.

고아원에서 그는 항우울제를 복용하며 약물에 중독된다. 그 알약을 먹은 그의 사고 회로가 무한정으로 확장돼 허공에 체스판을 상상하고 재빠르게 경우의 수를 계산해 승리를 이끌어낼 수 있는 무적의 상태가 된다. 알약으로 천재성을 얻게 되는 것이다.  

베스 하먼의 승리는 약물을 통해 비교적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체스계의 일인자 보르고프 앞에서는 이 약이 듣지 않는다. 베스 하먼은 진정한 승부사들의 세계에 약물이 도움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약물 사용을 중단한다. 승부사들의 세계에서 중요한 것은 얄팍한 속임수가 아닌 실력이다. 보르고프와 치른 마지막 경기에서 그는 약물에 의존하지 않고도 천재성을 발휘하는 진정한 체스 천재로 거듭난다.                    



“남성 중심 세계에 우뚝 선 여성 선수”     


  예로부터 스포츠는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여성은 고대 올림픽에 참관조차도 할 수 없었다. 올림픽의 창시자 쿠베르탱조차도 여성의 품위를 해친다는 이유로 여성의 스포츠 참여를 반대했다. 전쟁게임인 체스의 세계도 별반 다를 바 없다. 여성의 경기 참가는 애당초 전대미문의 일이며, 여성은 그저 참여했다는 것 만으로 주목받는다. 베스는 남성중심인 체스대회에 출전해 승리를 거듭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다. 결국 ‘여성 선수’라는 선입견을 깨고 세계권 대회에 출전해 당당히 승리를 거머쥔다. 남성 중심의 세계에 체스판의 가장 막강한 말 ‘퀸’이 된 것이다.           



“체스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인 친구들”     


  치열한 경쟁의 세계에서의 우정은 상상하기는 힘들다. 친구 관계로 지내던 선수들이 1,2위를 다투면서 멀어지는 것은 올림픽 경기에서도 보기 드문 일이 아니다. 하지만 베스 하먼을 둘러싼 체스의 세계는 다르다. 그는 체스를 통해 친구를 얻는다. 자신의 적수였던 경쟁자들은  체스를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친구가 되며 그녀의 천재성에 감탄한다. 그가 약물중독과 알코올 중독으로 망가지지 않게 지탱해준 것은 체스가 그에게 선물해준 친구다. 보르고프와의 경기를 앞둔 베스에게 친구는 그의 든든한 지원군이 된다. 베스에게 우정을 선물해준 체스. 그의 체스 세계는 세계인을 하나로 만들어주는 올림픽의 취지와 닮아있다.          



“냉전과 승부사들의 세계”     


  스포츠는 사회로부터 독립된 게임일 수 있을까? 평소에 스포츠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이 한·일 경기가 치러질 때면 TV 앞에 앉아 우리나라의 승리를 바라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때마다 스포츠가 정치·사회·외교·이념으로부터 결코 독립된 것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퀸스 갬빗>의 작품 배경은 세계 2차 대전이 끝난 러시아와 미국의 냉전 시기다. 냉정한 승부사들의 체스 세계에서 베스 하먼과 보르고프의 경쟁은 미국과 러시아가 체스판 위에서 벌이는 총알 없는 전쟁이다. 보르고프의 승리는 러시아의 승리이며, 베스 하먼의 승리는 미국의 승리를 의미한다.  스포츠 승부사들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승리를 차지한 자만이 영웅으로 남으며, 패배한 자는 기억되지 않는다. 이런 냉혹한 경쟁 속에서 승리를 차지하기 위해 베스는 전력을 다한다. 이틀간 연속된 체스판 위에서의 첨예한 대립 끝에 베스 하먼은 보르고프와의 경쟁에서 승리를 차지하게 된다. 보르고프는 신사답게 자신의 패배를 겸허히 받아들이며 베스의 승리를 진심으로 축하한다. 베스 하먼을 진정한 체스 천재로 인정하는 보르고프의 스포츠맨십은 체스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치열한 경쟁’이나 ‘성차별’, 그리고 국가 간의 ‘이념 대립’을 초월한 것임을 보여준다.

         

“체스의 여왕”   

  

 경기를 마치고 공항으로 향하던 중 베스 하먼은 소콜리니키 광장에 멈춰 선다. 광장에는 남성들이 모여 앉아 체스를 즐기고 있다. 흰 코트와 흰 모자를 쓴 베스 하먼은 자유로이 사람들이 모여있는 광장에 들어선다. 게임을 펼치던 사람들은 일제히 베스 하먼의 이름을 외치며 환호한다. 남성 중심 체스의 세계에서 자유로이 움직이는 베스 하먼은 체스판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움직일 수 있는 ‘퀸’인 체스의 여왕이다.          





  상대방을 꺾어 승부를 차지해야 하는 전쟁게임인 체스.  <퀸스 갬빗>은 체스 게임을 통해 성장하는 체스의 여황 베스 하먼의 성장통을 그려내고 있다.  또한 체스 게임을 두고 펼쳐지는 국가 간 냉전에도 불구하고 체스는 체스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한데 모아주는 스포츠 정신을 지니고 있으며, 이것은 '세계인을 하나 되게 하는' 이상적 올림픽 정신과 '인격의 완성'이라는 이상적 스포츠관과 맞닿아있다.  


      

<퀸스 갬빗> 공식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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