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있어서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내 인생을 함께 걷고 있는 반려자이자
내가 아는 어떤 선생보다도 존경스러운 동료 교사인 D.
언젠가 D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교사로 살면서 ‘온리원’이 될 필요는 없어.”
어차피 이 아이들은 자라서 초등학교 때 선생님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질거다. 아마 교사들에게 배웠다는 사실도 다 잊고 ‘그때 그 선생들은 뭘 가르쳤나.’라는 생각도 분명 할거다. 어차피 초등교사인 우리는 그들의 기억에 오래 남지 않는다. 그러니 그저 우리는 아이들 인생에 지나가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자. 그리고 더 나아가서 적어도 기억이 안나는 선생님이 될지언정 최악의 선생님이 되지 않도록. 그거 하나만 생각하면서 살자. 잊혀지지 않는 선생말고 자연스레 잊혀지는 선생이 되자.
(요약, 최고로 남으려고도 하지말고, 최악으로도 남으려고 하지 말자. 그냥 선생1,2,3,4,5,6,7 중 하나로…)
근래에 영화 <괴물> 속에 이런 D의 말이 담겨 있었기에 문득 그때 그와 나누었던 대화를 다시 상기시켜보았다.
아마 나는 잊혀질거다.
언젠가 가을 붉게 물든 산을 보며 드라이브를 할 때
나는 “와! 산이 울긋불긋하다!”라고 말했다. 당시 나는 1학년 담임 교사였고 이 ‘울긋불긋’이라는 단어는 통합교과서 <가을>에서 배우는 계절과 관련된 표현이었다.
울긋불긋.. 울긋불긋.
“D야, 울긋불긋이라는 단어 참 어감이 웃기지 않아? 나는 저 산을 보면서 울긋불긋하다는 생각을 하잖아..난 그걸 어디서 배웠지?
나 초등학교 때는 안 배웠거든…??“ 내 질문에 대한 D의 답은 이랬다.
“배웠겠지. 너의 선생님들이 다 가르쳐줬을거야. 너가 하는 것처럼. 그저 너가 기억이 안날 뿐이지.”
내가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고 생각한 많은 부분들이 어쩌면 생각보다 누군가에게 배운 것들일 수 있겠구나 생각한다.
그저 가르쳐준 이에 대한 기억은 사라지고 그 사람이 내게 가르쳐준 무언가만 남았을 뿐이지.
이건 나와 학생의 관계에서도 똑같다.
학생들이나 나나 우리는 서로의 인생에서 잠깐 스쳐가는 존재이다.
1년을 학생으로 맘고생을 한다고 해도 괜찮은게 이런거다. 어차피 지금은 큰 존재같아도 그냥 지나가는 행인과 같다. 나를 좋게 봐주든 아니든, 나는 잊혀지고 내가 가르쳐준 것들만 아이들에게 남게 되겠다. 그걸 누가 언제 가르쳐준지는 몰라도 말이지. 그리고 나도 똑같다. 학생들이 내게 상처를 주든 기쁨을 주든 상처는 다른 기쁨으로 잊혀지고 기쁨은 다른 상처로 가려진다. 하지만 나도 내가 만난 학생들로부터 배운 것들은 계속해서 지니고 살겠지.. 그것이 언제 배운 교훈인지는 몰라도 말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스쳐지나간다는 것은
정말 큰 인연이구나.
나를 지나쳐줘서
그리고 그로인해 많은 생각의 주제를 던져줘서
그 인연들에 참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