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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타 Sep 20. 2022

인간의 물욕은 끝이 없고 같은 구매를 반복하지

하늘 아래 같은 회색은 없다. 연회색, 흰끼 도는 회색, 진회색···

대한민국의 수많은 구여친/구남친들이 "자니?"를 두려워하는 시간이 자정 즈음이라면, 나는 저녁식사 이후부터 자기 전까지의 시간을 두려워한다. 누군가 나를 찾을까 봐서가 아니라 내가 찾는 대상이 있어서다.


저녁을 먹고 나면 양치를 하고 자연스레 침대로 향한다. 침대에 누워 배 위에 노트북을 올리거나, 나와 노트북이 정답게 옆으로 마주 보고 누운 형태로 보고 싶던 영상 콘텐츠를 즐기며 시간을 보낸다. 이렇게 스르르 잠에 들어 다음날 아침을 맞이하는 것이 나의 계획이지만, 이 계획은 늘 플랜 B로 대체된다. 주의력의 문제인지 분명 재밌는 걸 보고 있음에도 더듬더듬 휴대폰을 찾고, 나도 모르게 쇼핑을 시작한다.


문제는 반드시 사야 하는 물건이 아니라는 거다. 삶을 유지하는 데에 있어 오늘 입은 것보다 살짝 연하고 통이 좁은 슬랙스는 필수적이지 않다. 알지만 멈출 수 없다. 이유도 아주 다양하다. 이제 가을이니까 가을맞이용 자켓이 필요하고, 생각해 보니 지금 가진 그 자켓은 좀 오래된 것이라 버려야 할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아우터를 구매하기에 아주 충분한 명분을 획득했다. 여름에도 구스 패딩을 구매한다. 여름에는 역시즌 세일을 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사고 싶은 제품이 해외 직구를 통해 구매 가능한 브랜드라면 더더욱 요긴하다. 해외 배송은 일정 금액 이상 구매 시 배송료가 붙지 않기 때문에 평소 뉴런을 자극했던 상품들을 굳이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어 함께 구매한다. 아주 현명한 소비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현명한 소비자는 머지않은 미래에 카드 명세서를 보며 텅 빈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게 된다.



별안간 고물이 되어 버린 자전거


작음이*의 물욕도 아주 대단하다. 퇴근 후 집 앞에 가면 늘 박스들이 기다리고 있다. 뱁새눈을 뜨고 또 뭘 산거냐고 하면 아주 뭐 하나 사연 없는 것들이 없다.

*작음이: 남자 친구(30대/키가 작음/특기: 쉬고 있으라면서 실시간으로 본인 근황 공유해서 사람 귀찮게 하기)


자꾸만 흐려지는 총기에 자신감도 결여되는 것 같아 'Love myself' 하고자 구매한 뇌 영양제, 산지 오래되어 물이 자꾸 들어오고 앞이 뿌연 나머지 도저히 수영을 지속할 수 없어 구매한 수경, 다른 사람의 불쾌함을 유발할 수 있어 하해와 같은 마음으로 구매한 니플 패치 등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이야기의 연속이다. 전자기기나 생필품, 먹는 것 등 구매 범주가 얕고 넓은 작음이와 달리 나의 소비 카테고리는 명확하다.



<내가 허구한 날 구매하는 것들>


@ 의류

1. 기본 티의 경우, 특히 흰색옷은 아무리 관리를 잘해도 생각보다 오래 입을 수 없기 때문에 자주 교체한다.

-> 자주 교체하지 않아도 되는 아우터까지 특별한 이유 없이 사들이는 것이 문제이다.

2. 청바지는 같은 디자인이어도 물 빠짐이 서로 다르고, 미묘하게 핏이 다르다.

-> 이왕 산 거 열심히 입어줘야 하는데 손이 가는 청바지는 한정되어 있어 돈지랄이 아닐 수 없다.


@ 잡화

1. 한 켤레의 운동화만 주야장천 신을 경우, 급속도로 닳기 때문에 여러 켤레를 돌려가며 신어야 한다.

-> 청바지와 마찬가지로 신던 것만 신어서 결국 그것만 닳고, 또 구매한다.

2. 왠지 저 모자, 저 귀걸이 나만 소화할 수 있을 것 같다.

-> [속보] 아무도 소화 못했던 그 제품, 나 역시 소화 못해···


<웬만해서는 내 돈 주고 사지 않는 것들>


@ 과일

1. 과일은커녕 생과일주스도 내 돈 주고 사 먹지 않는다. 나에게 필요한 건 피와 커피뿐이다.

-> 샤인 머스캣, 체리 제외

2. 몸에 좋다고 알려진 과일도 당 수치가 높아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 당 수치를 걱정하며 마카롱을 먹고 있다.


@ 화장품

1. 그 흔한 파우더나 쿠션도 없고, 선크림만 바른다. 가장 공들이는 화장은 아이라인 그리기다.

-> 출근 시간 단축에 혁혁한 공을 세워주었다.

2. 고가의 화장품을 종류별로 사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 서른이 넘도록 제대로 된 화장법을 모르는 어른으로 성장했다.



주변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눠 봐도 가장 많은 돈을 투자하는 카테고리가 제각각인데, 각자의 삶의 방식이 녹아있어 굉장히 흥미롭다. 나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좋다. 옷을 좋아하는 사람과 옷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좋지만, 내가 모르는 음악 장르를 알려주고 미술 작품을 소개해주는 사람을 만나면 다른 세상을 만난 것처럼 신기하고 재미있다. 그래서 브런치를 좋아하는 것 같다. 브런치는 작은 세계처럼 내가 직접 경험할 수 없는 타인의 세상을 보여준다. 내가 소개할 나세상도 흥미롭게 보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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