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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타 Jan 10. 2023

썅년에게도 배울 점은 있다

근데 이제 열에 여덟은 반면교사

언제부턴가 꽤 많은 사람들이 이상형으로 '배울 점이 있는 사람'을 꼽는다. 비생산적, 비효율적인 모든 것을 극도로 꺼리는 나 역시 이성에 대한 개념이 생긴 이후부터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며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최우선으로 고려한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러한 기준은 비단 연인관계뿐만 아니라 친구에게도 동일하다. 너도 친구, 쟤도 친구, 우리는 모두 친구! 인 작음이*와는 다르게 나는 친구 자리를 쉽게 내어주는 것이 어렵다.

*작음이: 남자 친구(키가 작음/분명 긴축재정 중인데 허구한 날 약속이 있음)


간혹 회사나 특정 모임에서 누군가 "○○씨랑 친해~?"라고 물어보면 거의 대부분 "아 네 뭐 그냥"정도로 답하곤 한다. 이렇게 대답하게 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상대방의 마음도 내 마음과 같을지 아닐지 알 수 없으며, 둘째는 사실 아직도 친함의 기준이 무엇인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매슬로우의 욕구위계론이 작용한다면 작음이에게는 친함단계론이 존재한다. 나와는 아주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데, 말로 설명하자니 너무나 길어질 것 같아 표를 준비했다. 먼저 나의 인간관계는 다음과 같다.


박현타의 인간관계


극소수의 친한 사람들과 대다수의 지인, 그리고 소위 어떻게 되든 별 상관이 없는 남들로 이루어진 게 나를 둘러싼 인간관계다. 팔은 안으로 굽는 것이기에 아주 심플하고 명료한 데이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작음이의 인간관계


작음이는 인간관계 중 70% 이상이 친함에 속한다. 더 놀라운 것은 아주 친함, 중간 친함 등 각 단계별로도 숨겨진 상/중/하가 있고, 그 분류는 만남의 빈도나 대화의 깊이 등으로 정해진다는 것이다. 귀찮아서 저 정도로만 표현한 것인데 각 잡고 그의 인간관계를 그려 보면 골 때리게 흥미진진한 그림이 나올 것이라 확신한다.


세상을 편한 대로만 살려고 하는 나의 치명적인 단점은 작음이 덕분에 많이 개선되고 있다. 왜 때로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지, 왜 잘하는 것만 하려고 해서는 안되는지, 왜 가끔은 내키지 않아도 해야만 하는지 등 예전 같았으면 소리를 지르며 무턱대고 발작버튼을 눌러버렸을 많은 일들에 대해 작음이는 꾸준히 가이드라인을 준다. 제법 훌륭한 선생님이다.



옆집 누나한테 일구양덕은 영어로 뭔지 여쭤봐봐


선생님이 알려주신 것, 책에 명시되어 있는 것만 달달 외우면 선방은 했던 학창 시절과 실제 인생은 참 많이 다르다는 걸 해가 갈수록 몸소 느낀다. 나와 정반대의 가치관을 가진 사람에게도 분명 배울 점이 있고, 뭐 하나 부족한 것 없어 보이는 사람에게도 결핍은 있다.


조금은 자극적인 제목이지만 내가 제목을 쓰며 떠올렸던 이전 회사 팀장에게도 분명 배울 점은 있었다. 자기 맘에 들지 않으면 소리를 지르고, 커리어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업무를 부여하고, 내가 한 업무를 들고 본인이 좋아하는 다른 팀원과 함께 임원 보고를 들어가며 피눈물을 쏟게 만들었던 사람이지만 당신 자식만큼은 끔찍이 여겼다. 휴대폰 너머로 사춘기 딸이 반항심 가득 담긴 말들을 툭툭 뱉어도 그렇게 너그러울 수가 없었다. 눈물나는 모성애였다. 정말 바쁜 와중에도 딸의 식사 여부나 학원 일정은 반드시 챙겼다. 모든 통화가 사무실 안에서 이루어졌기에 대화 내용을 만인이 알게 된다는 문제점은 있었지만 그 또한 '회사에서 사적인 대화는 어떠한 경우에도 반드시 나가서 하자.'는 자세를 갖게 되었으니 그분께 배운 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글을 쓰기 전, 커피를 내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들면서 문득 얼음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본디 따뜻하게 마셔왔던 커피에 들어간 얼음들은 얼죽아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낼 만큼 영향력 있는 존재가 되었다. 내가 가진 강점으로 다른 사람들과 시너지를 만들며 서로의 강점을 더욱 극대화시킬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생각만으로도 갑자기 기분이 좋아져 작음이에게 앞으로 나는 얼음 같은 사람이 되겠다고 말하니 작음이는 지금도 충분히 얼음장처럼 차갑다고 답했다. 2023년에는 작음이와 그다지 안 친한 사이로 지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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