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관, 임신, 그리고 출산까지의 기록 (26)
@임신 37주 차
드디어 예정'월'에 진입한 임신 37주 차. 37주 차의 시작은 주말이라 친한 전 직장 동료언니가 친히 우리 집까지 방문해 주었다. 결혼식을 가야 했기에 점심 먹고 몇 시간 수다수다를 하다가 가야 해서 조금 아쉬웠지만 오랜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어 매우 반가운 시간이었다. 이미 아들이 초등학생이기에 이런저런 조언도 얻을 수 있었고!
37주 차에는 남편과 워시타워 청소를 한 뒤 드디어 미뤄 놓았던 금명이 물품 빨래를 시작했다. 매일매일 쓰일 수건부터 금명이 옷들과 양말, 모자, 턱받이 등 수건과 의류 위주로 먼저 하고 그 외의 것들은 천천히 할 예정이다.(또 미룬다고???) 여러 영상들과 인터넷을 보면 특히나 아기 수건의 경우 무려 3단계로 나눠서 빨래를 하는 것이 공식처럼 나와있었다. 그런데 그러다 보면 거의 하루 종일 걸리는 게 자연건조를 거친 3단계이기 때문이다. 수건 회사에서 그렇게 세탁하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이 공식(?)은 언제 누구에게서부터 먼저 시작된 걸까?
나는 수건 회사의 안내대로 그냥 한 번만 울코스로 세탁 후 자연건조하고 건조기의 먼지 털기 기능을 통해 먼지만 털어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건조를 하다 보니 하루 꼬박 걸린 빨래. 금명이의 옷들과 손싸개 & 발싸개 세탁은 그다음 날에 진행했고, 수요일에 모자, 양말, 턱받이 등을 세탁함으로써 의류는 대략적으로 세탁이 마무리되었다. 사실 나눔 받은 옷들이 더 있었는데 사이즈가 커서 당장 입히지 못할 것 같은 옷들은 이번에 세탁을 하지 않았다. 그 외 기갈대나 아기 침대에서 세탁해야 하는 커버들, 인형들과 같은 다른 아이템들은 남편의 휴가가 시작되면 같이 할 생각이다.
이렇게 나의 37주도 큰 문제없이 지나가나 싶었는데 의외의 정신적인(?) 이슈가 갑자기 생겨났다. 호르몬의 영향인지 아니면 긴 시간 혼자 거의 집에서만 지내다 보니 여러 생각이 들면서 그렇게 된 것인지, 아니면 휴가 시작일이 하루 미뤄지면서 갑자기 장거리 출장을 가야 한다고 해서 그런 것인지 갑자기 남편에 대한 아쉬움과 섭섭함이 폭발해 버렸다. 사실 남편은 항상 나를 먼저 배려하고 웃게 해주려 하고 소소한 이벤트도 해주는 다정하고 좋은 사람인데 올해는 정말 매달 매달이 너무나 바빠서 항상 피곤해했다. 더군다나 12월 초부터 나를 위해 쓰지 못한 휴가를 몰아서 거의 한 달을 쉬려고 하고 있었기 때문에 직전까지 흔히 말하는 소위 '빡세게' 일을 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냐면 항상 잘 챙겨주었던 내 생일 때에 이벤트는커녕 축하한다는 말을 잊을 만큼 업무에 대한 피로가 극도로 달해 있었던 것이다.
올해 들어 유독 업무에 지쳐하고 피곤해하던 남편이었고, 나는 임신했음에도 불구하고 컨디션이 일상생활을 못할 정도로 나쁘지 않았으므로 웬만한 집안일은 평소대로 하고 피곤해하는 남편 옆에서 나름 으쌰으쌰 해주려고 노력하기도 했다.(느끼지 못했으려나..?) 그래서 내 생일 때 직접 저녁상을 차리고 예전 같은 축하를 받지는 못하였지만 그래도 내 생일이라고 얼른 퇴근하고 온 남편을 격려하며 같이 저녁을 먹었더랬다. 그때는 그 모든 것이 괜찮았고 또 이해가 되었다. 임당 확정 후 앞으로 같이 산책하자던 그가 퇴근해 오면 항상 피곤하여 산책은커녕 소파에 누워 예능 프로그램만 보고 있었어도 괜찮았다. 업무가 힘든 걸 알았으니까.
그런데 임신기간 동안 남편이 내게 했던 말들과 행동들 중 알게 모르게 무의식 중에 내 가슴 한 편에 불만으로 박제되어 있던 일들이 있었나 보다. 그렇다. 중요한 건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임신기간 동안 문득문득 나오는 말들과 행동들이었고, 왜인지 그 모든 것들이 하나하나 생각나기 시작하면서 계속해서 내 머릿속을 맴돌며 기분을 다운시켰다. 나는 입덧이 있었지만 생각보다 버틸만했고(물론 회사에서 아무도 모르게 토한 적이 있지만) 간혹 쥐가 나는 것 말고는 특별한 문제는 없어 보였기에 그랬을 수 있으나, 그것이 다가 아니었는데 남편이 내가 겪는 여러 가지 임신 증상들에 대해 너무 간과하고 있는 것 같았다. 또, 출산 후에 내가 어떤 일을 겪게 될 것인지 이를 위해 어떤 준비물들을 챙겨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았으며 금명이 관련 대부분의 물품들에 대해서도 나 혼자 찾아보고 나 혼자 구매하고 나 혼자 당근 하고(무슨 내가 시스타도 아니고!?)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것 같은 느낌이 점점 강하게 들었던 것이다.
결국 전 날 유튜브로 육아 관련 콘텐츠를 보고 있었는데 남편이 또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길래 간단히 내 속내를 비췄더니 갑자기 출산 브이로그를 열심히 보기 시작한 남편.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기분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고 그날 새벽에 잠에서 깨어 화장실에 갔다가 갑자기 옆구리에서 배까지 통증이 와서 한동안 침대로 가지 못하고 거실 소파에서 통증이 가라앉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런 여러 가지가 겹쳐서 그런지 이 날은 아침부터 다운된 표정과 행동을 숨길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원래 식사할 때 둘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틀어놓고 같이 하하 호호하면서 보거나 꽤나 활발하게 수다를 떨면서 밥을 먹는 스타일인데, 이 날 점심때는 거의 대화 없이 식사를 이어나갔다. 내가 대화를 할 의지가 없었으니까. 이럴 때는 남편이 옆에서 왜 그러는지 물으면서 풀어주려고 하는데도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사실 이 날은 말을 할 수 없었던 것이 이야기를 하는 순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진짜 이건 호르몬의 영향인가...?
그래서 남편이 출근한 뒤에 카톡으로 메시지를 남겼고,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으면 이야기하라는 남편의 말에 전체 보기>> 표시가 나올 정도로 장문의 편지와도 같은 글로 내가 임신기간 동안 무엇이 아쉽고 섭섭했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남편은 운전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미안하다며 잘 읽어보고 고치겠다는 답을 해왔다. 일단 이야기를 하니 하기 전보다는 나아진 것 같기도 했지만, 원래 가만히 있기보다는 집안일을 찾아서 하고 이리저리 움직이던 내가 이 날은 하루 종일 무기력해서 저녁 전까지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