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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하비행 May 10. 2023

제사(祭祀) 문화와 코호트(cohort)

제사의 소멸의 원인은 각기 다른 경험의 충돌 때문.


1. 아버지는 종손이시다. 내 마지막 기억에도 한 달에 최소 2번은 제사가 있었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바쁘셨던 것 같다. 아래 자식들이 장성해서 분가하고, 집안 웃어른들도 돌아가시고, 부모님이 연로하신 뒤에야 제사는 1년에 2번으로 통합, 간소화되었다.


2. 이번 제사 참석은 2번 중 한 번이었다. 숫자는 줄었지만 형식은 여전히 같았다. 일주일 동안 진수를 마련해 서너 시간 꼬박 성찬을 차리고, 예를 위한 시간은 자정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그래도 나와 같은 세대(즉 나의 사촌들) 참석이 없다는 것이 바뀐 내용이다.


3. 제사 전까지 70을 넘기신 삼촌들과 나는 사뭇 진지한 대화를 이어갔다. 주제는 영원한 미제인 ‘제사의 의미론“이었다. 여러 반론들이 오고 갔다. 각자 유튜브를 통해 익힌 박식(博識) 얇고 넓은 - 과학, 통신, 교통, 철학, 종교사 가 총동원되었다. 그래서 도저히 상호 설득되지 않는 막상막하의 박식한 지식의 향연이 되고 말았다.


4. 그럼에도 예전에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제사 소멸’의 단초를 찾을 수 있었다. 나이도 과학의 발전도, 풍족한 삶도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코호트 - 팬데믹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용어로 “특정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집체라는 의미” -였다.


5. 아버지 세대는 과거 집단 거주의 DNA를 품고 있던 세대다. 즉 특정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그런데 나의 세대 또는 그 아래 세대들은 다르다. 같은 지역에 살더라도 경험의 강도와 질, 개념이 다르다. 왜냐면 온라인으로 네트워크 된 세대들은 지역의 영향을 덜 받는다.


6. 사유의 개념도 바뀌었다. 남녀, 세대, 빈부 등 경험의 스펙트럼이 무척 넓어진 것이다. 사실 부모님 댁에 있으면서 제사가 불편했던 것이 아니라. 대전, 충청북도, 경상도, 서울에 흩어져 살고 있는 서로 다른 직업으로 한평생을 살았던 삼촌들과의 ‘특정 경험’들이 불편했다.


7. 나아가 취침과 기상 시간, 각자의 화장실 점유율, 대화의 목소리 톤 높낮이, 식탁 매너 등이 함께 있는 시간 동안 너무 불편했다. 마치 된장찌개 하나를 7명이 공유해서 각자의 숟가락으로 떠먹는 것처럼 아무것도 아니지만 왠지 내키지 않는 상황들이었다.


8. 집을 떠나면서 부모님께, 다음 제사는 참석하지 않고 미리 와서 인사드리고 올라가겠다고 하니, 아버지께서 ”안 그래도 제사는 이제 그만할 거다 “라고 하신다. 공유할 것이 없거나, 다른 사람들과 7평 남짓 거실에 하루 종일 모여 있는 것도 고역이라면 고역이다.


9. 그러고 보니, 새벽까지 온라인 바둑 하시고, 5시에 잠에서 깨시는 아버지도 새벽에는 여기저기에서 시끄럽다. 조용히 해 달라는 핀잔(?) 아닌 요구를 그 하루 동안 몇 번을 받으셨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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