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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하비행 Apr 12. 2024

실행이 곧 답입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떠난 선배가 가져온 것.


1. 제가 다닌 대학 기숙사는 매년 가을 ‘오픈 하우스’라는 축제를 열었습니다. 저는 선배의 추천으로 어느 해 ‘기숙사 오픈하우스 축제 기획’ 일을 맡게 되었는데, 기획이라는 일이 처음이었지만, 매년 반복되는 내용을 재탕하고 싶진 않았습니다.


2. 그래서 과감한(?) 아이디어의 기획서를 내놓았지요. 그것은 남자와 여자 기숙사를 잇는 가교를 놓고, 다리 위에 연등을 장식하는 일이었습니다.


3. 기획(전략)의 요체는 ‘실행 가능성’에 있다. 그걸 알리 없던 당시의 저는. 그해 우리의 역량을 한참 넘긴 아이디어를 내놓았던 것이죠. 참여한 봉사자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고, 불만과 함께 매년 하던 걸 하자고 목소리를 높였죠. 순간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화끈거렸습니다.


4. 그때. 저를 추천했던 선배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그래서 뭐부터 하면 되는 거니?”라고 묻는 겁니다. 덕분에 회의장은 조용해졌으나, 솔직히 저 역시 뭐라고 대답할 게 없더군요.


5. 선배는 그 길로 회의장을 나가 자신의 오토바이를 타고 떠나버렸습니다. 그리고 한참 뒤 트럭 한 대와 함께 돌아왔는데. 트럭에는 건설 용어로 아시바*(비계)라는 철골 구조물들이 한가득 실려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묵묵히 아시바를 세우기 시작하더군요. 봉사자들도 처음에는 투덜거렸지만 그를 따르기 시작했고요.


6. 연등은 불교 용품점에서 다시 한 트럭을 사 와 달았습니다. 그해 가을. 오픈하우스의 화제는 단연 ‘가을밤공기에 아롱지는 연등의 가교’였던 건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이 기억이 선명한 이유는, 그 사건 이후 개인적으로 ‘기획’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과, 리더십의 진짜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7. 선배는 졸업 후 서울 모 사립대학의 교직원이 되었고, 그 뒤로도 몇 번 얼굴을 봤습니다. 문득 그 선배가 기업가가 되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상상이긴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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