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결혼하고 미국으로 갑니다.

유학생 남편의 부인으로 살아가기

by 지니

“나 결혼하고 미국 갈 거야”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했을 때 모두들 놀란 눈치였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남자친구도 없었을뿐더러 결혼보다는 내 삶을 즐기며 살겠다던 내가 결혼을 한다니, 그리고 미국에 간다니!


남편을 만난 건 작년 여름이었다. 중학교 동창이었던 우리는 오랜만에 우연한 기회로 연락이 닿아 커피를 마시게 되었다. 둘 다 카페에 일찍 도착했는데, 함께 만나기로 한 친구가 30분 정도 늦는 바람에 단둘이 오랫동안 얘기를 하게 되었다. 연락을 하지 않고 지냈던 긴 시간만큼이나 서로가 전과는 다르게 느껴졌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우리는 연인 사이로 발전하게 되었다.


미국에서 공부 중이었던 남편은 방학이 끝나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지만 장거리 연애도 큰 탈 없이 잘 해 나갔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결혼까지 약속하게 되었다. 남편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결혼을 결심하고 확신이 서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양가 부모님의 적극적인 응원과 지지 덕분에 결혼 준비 또한 순탄하게, 일사천리로 할 수 있었다. 모든 것들이 순조롭게 진행되었기 때문에 결혼하는 것과 미국으로 떠나는 것 모두 운명처럼 받아들였다.


하지만 결혼식이 다가올수록 처음과는 다르게 마음이 복잡해져갔다. 지금까지 짧게는 6개월, 길게는 3년 정도 해외에서 산 경험이 세 번이나 있었지만 모두 학교나 학원에 소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떠난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별로 없었다. 반면에 미국에 갈 경우 학생인 남편의 부양가족으로서, 경제적 이득을 취할 수 없는 비자를 받고 가는 것이기 때문에 일을 할 수 없고, 소속이 사라지게 된다. 남편만 믿고 떠나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앞으로 나를 소개할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친구들은 승진도 하고 이직도 하고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는데 나만 정체되고 있는 것 같았다. 한 번도 주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기에 새로운 삶을 받아들일 준비가 많이 필요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평생 함께 지낸 가족과 떨어져야 한다는 것! 그것이 단지 물리적인 거리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과 동시에 정신적으로도 정말로 ‘독립’을 해야 되는 것이었다. 부모님의 보살핌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남편과 함께 하나의 가정을 이루고 그 안에서 우리가 책임감을 갖고 가정을 하나하나 꾸려나가야 한다는 것이 정말 ‘어른’이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지금까지는 무슨 일이 있으면 가족들에게 의견을 물어보고 상의를 했다면, 이제는 남편과 모든 것들을 같이 의논하고 결정해야 한다. 기쁜 일과 슬픈 일들도 남편과 가장 먼저 나눠야 하니, 정말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 불안감을 가득 안고 마침내 결혼식을 치르게 되었다. 결혼식 내내 싱글벙글이긴 했지만 설렘 반, 걱정 반, 긴장 반 다양한 감정들이 내 마음속에 휘몰아쳤다. 그러나 의외의 순간에 나의 걱정이 사르르 녹게 되었는데, 그건 바로 친구의 축사였다.



“진이는 엄청 부지런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늘 무언가 배우고, 일하고, 활동하는 걸 좋아하고 잘하는 친구예요. 또 작은 것에서도 의미를 찾고, 행복을 만들 줄 아는 감성 충만한 친구랍니다. 이런 진이와 평생 함께할 수 있는 행운을 잡게 된 걸 축하드려요!


하지만 때때로 자기 자신에게 너무 엄격하게 구는 면이 있으니 진이가 편안하게 모든 짐을 내려놓고 본연의 모습으로 쉴 수 있는 쉼터가 되어주면 좋겠어요.”


그래, 물론 결혼을 하면 현재 나의 상황이 많이 변하기는 하지만 ‘늘 무언가 배우고 활동하는 걸 좋아하고, 작은 것에서도 의미를 찾고 행복을 만들 줄 아는’ 나의 정체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내가 편안하게 모든 짐을 내려놓고 쉴 수 있도록’ 무한한 사랑을 주는, 든든한 버팀목인 남편이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고, 결혼 생활과 미국 생활을 잘 해나갈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조금 생겨나는 것 같았다. 너무 고맙고 감동적인 축사였다.


나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좋아한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20대 때는 취업 준비를 하며 알을 깨려는 노력을 했다면, 이제는 결혼과 동시에 미국으로 떠나는, 또 한 번 알을 깨는 노력이 필요할 때이다. 새가 알을 깨는 고통을 감내해야지만 세상에 나올 수 있는 것처럼 익숙하고 편한 것으로부터 떨어져 나오기 위해서는 진통이 필요하고, 그만큼 새로운 세계는 이전과는 다른 또다른 즐거운 이야기로 가득 찰 것이다. 앞으로 나의 결혼 생활과 미국 생활에 힘든 점도 있겠지만, 새로운 챕터를 잘 써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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