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결혼은 처음이라서요

'우리'가 되어 가는 과정

by 지니

미국에 온 지 어느덧 두 달이 되어 간다. 내가 한국에서 미국에 가게 되었다고 말을 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 중 하나는 '가서 뭐할 거야?'였다. 결혼 준비만으로도 벅찬데 아직 가보지 않은 미국에서 뭐할 건지까지 생각해야 한다니! 가뜩이나 조급한 나인데 그런 질문들을 받으니 부담이 되어서 남편한테 하소연을 한 적이 있었다. "다들 미국가면 뭐할 건지 물어보는데 나 미국에 가면 뭘해야 해?" 그럴때면 남편은 웃으면서 할 거야 많지, 일단 쉬면서 찾아보자고 나를 안심시켰다. (가끔 남편의 이런 여유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궁금할 때가 많다.)


근데 미국에 오니 조급함은 더했다. 일단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비자 때문에 은행 계좌조차 만들지 못했고 운전면허를 만들던 무엇을 하던 항상 남편과 함께 해야 했는데, 꼭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어린아이가 된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남편의 친구들을 만나느라 바빴는데 모두가 박사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다들 매일같이 미팅도 하고 논문도 쓰고 내가 모르는 세계에서 바쁘게 생활하고 있는데 상대적으로 나만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나는 유튜브도 하고 글도 쓰고 나름 뭔가를 하면서 보냈지만 충족되지 못했고, 바로 다음 달에 다른 주로 이사를 해야 했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시작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 마음이 더 조급했다. 그래서 초반에는 남편 몰래 울기도 했고,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걱정할까 봐 이런 나의 마음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기도 힘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우리는 바쁘게 이사 준비를 하고 마침내 새로운 주로 이사를 했다. 이곳은 남편도 나도 연고가 없는 곳이다. 이제야 무엇인가를 같이 헤쳐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부부인데 그러다 보니 내가 놓치고 있었던 한 가지가 보였다. 남편과 나는 이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함께 해야 하는 '부부'라는 것이다.


이전에는 남편의 삶에 내가 쏙 들어가 나는 없고 남편만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이제는 조금 더 함께라는 생각이 자리잡게 되었다. 초반에는 남편과 나를 분리해서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남편은 공부도 하고 일도 하고 계속 무엇인가를 성취를 해나가는 것 같은데 나는 그대로 정체해 있는 기분이 들었던 것도, 미국에 와서 내가 희생한다고 생각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던 것 같다. '우리'를 보지 못하고 '나'만 보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은 남편도 많은 부분에서 희생을 하고 있는데 나를 위해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은 보지 못했던 것이다.


이제 나는 혼자가 아니다. '나의 미래'가 아니라 남편과 '우리의 미래'에 대해 같이 의논해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이 큰 힘이 되었고, 동시에 함께라는 것을 깨달아가고 있다. 마음이 한결 편해졌고, 서둘러서 무엇인가를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마음이 자리 잡았다.


얼마 전에 읽은 책 <어쩌다 가방끈이 길어졌습니다만>에서 '사전을 찾아보면 헤프게 쓰는 것도 낭비지만 가진 것을 헛되이 하는 것도 낭비'라고 했다. 이 문장이 정말 마음에 들었는데 꼭 생산적인 무엇인가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시간 낭비가 아니라, 오히려 주어진 이 시간을 충분히 즐기지 못하고 걱정만 하는 것이 낭비라는 생각을 했다. 이제는 조급함을 조금 내려놓고 내게 주어진 이 쉼 같은 시기를 충분히 느끼고, 즐기면서 새로운 삶을 견고하게 다져나가는 소중한 시간으로 잘 보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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