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자본주의를 존속시키는 연금술이다. 가치가 없는 상태에서 가치가 있는 상태로 만드는, 즉 죽은 자본주의도 되살릴 수 있는 기술이다. 인간의 돈에 대한 욕망이 끊임없는 한 경제의 한 현상인 수요와 공급은 계속된 변증법적 과정을 이어간다. 욕망이란 한계가 없는 지향점이고 인간의 몸과 자연이 허락하는 한 부를 위한 노동은 영원하다. 이 영원성이 자본주의를 영속시키지만 한계 없는 욕망의 탐욕이 노동을 향한 정신의 고귀함을 고갈시킨다. 노동의 열망이 차단되면 될수록 탐욕은 광기를 부리고 현 상태의 자본주의가 지닌 모든 정신을 완전연소시킨다. 외부에서 이러한 현상을 주어진 사실로서 보면 저하되는 자본 이익률 속에 손실분을 상쇄하기 위한 공급과잉이 관찰된다.
자본주의의 모든 위기는 공급과잉이다. 예외는 없다. 어떤 이들은 이러한 위기가 자본주의의 종말을 의미한다고 하지만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가 작동원리의 중단을 의미하지 않는다. 수요와 공급의 변증법적 과정의 속성은 더 많은 부를 향한 갈망이며 일정 수준 이상에서 만족을 통한 노동의 중단 없이는 자본주의의 육체성은 지속된다. 다시 말해 공급과잉 위기가 지속되어도 자본주의는 작동하며 자본 이익률이 제로여도; 마이너스 금리 상태를 말할 수도 있음, 자본주의는 존재하게 된다. 단지 자본주의의 백미인 역동성이 떨어질 뿐이다.
자본은 화폐가치의 자기 증식이다. 인간의 욕망이 화폐라는 물질성에 표상되었기에, 자본은 쇠락과 정체도 용납하지 않는다. 오직 확장만을 바라며 위기를 타개해 나간다. 일시적인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 현상은 통상적인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으로 극복되지만 기술발전의 더딤이 자본 이익률 저하에 직면하게 되면 광범위한 수요 진작이 요구된다. 따라서 수요측면에서 전쟁은 군수물자의 수요를 증대시키고 과잉된 물품을 소거해 나가며 이익률 저하에 따른 필요악이 된다. 전면전일 경우 공급측면에서도 전쟁은 마술을 부린다. 거개의 노동은 더 많은 부라는 이념을 향하지만 실질은 생존을 위한 투쟁이다. 생존이 절실해질수록 노동 생산성은 향상된다. 자신의 전 존재를 건 사투는 모든 것을 필요로 하게 된다. 이것이 전쟁이다.
혹자는 태평양 한가운데 대량 투여된 노동력으로 생산된 군수물자를 수장시키는 행위와 전쟁이 무엇이 다르냐고 반론을 제기할 수 있지만 이는 가치의 창출이라는 면을 생산 가치와 교환가치라는 관점에서만 바라본 인식이다. 두 관점에서만 보면 전쟁은 의미 없는 통수권자의 자존심에서 유발된 사태이다. 어느 누구도 바다 한가운데 생산물을 버리기 위해 노동하지 않는다. 저기에 가치가 있다고 누군가 발설하기에 저기에를 지시하는 기호가 생성되고 사람들은 그곳을 바라본다. 기호의 구속성은 주체성과 반비례이다. 가리킴이 지시하는 허상을 믿는 그들이 많을수록 그들 속에 빠지기 십상이다. 휩쓸린 그들은 기호의 약속을 믿었기에 그곳에 전심전력을 다한다.
전쟁의 잔혹함은 그들 속에 휩쓸리면 살상을 위한 전 존재적 노동 투여를 강요받고 자신의 생존을 위해 그것을 스스로 의지한다는 점이다. 전 존재적 노동 투여, 생을 건 사투는 항시 새로움을 만들고 새로움 중에는 기술 발전이 포함되며 인간을 구원하든 말든 기술은 자본주의가 영속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준다. 부의 창출은 단순하다. 노동하면 부는 생성된다. 땅 속에 무언가 중요하다고 믿는 것을 묻고 사람들이 파내게만 만들어도 부는 만들어진다. 그곳을 지시할 수만 있으면 된다. 그러하기에 전쟁에서는 명분이 중요하다. 일단 가치 있다고 믿게만 만들면 노동을 위해 모든 것을 필요로 하는 생을 건 노동이 창출된다.
개인은 희생된다. 개인들의 육체는 파괴되지만 자본주의의 육체성은 기술 발전을 토대로 강화된다. 전쟁 승리 국가는 패권국으로서의 우월한 지위를 누리며 영속할 수 있다는 믿음의 정신적 기반을 다진다. 이는 신용도 향상으로 이어지며 국가의 인공적 부를 만들어내는 역량을 확대 재생산한다. 전쟁 이후는 여러 면에서 자본주의에 유리하다. 대규모 학살 속에 생의 권리보다는 살아야 한다는 의무가 강조되는지, 상대적 임금 하락을 전쟁 후에 보편적으로 경험한다. 직관적으로 인간 목숨 값의 저하로 읽힌다. 임금 하락은 잉여가치의 확대를 만들고 자본 축적을 용이하게 한다. 또한 줄어든 인간 수에 비례하여 감소된 노동력의 빈 공간을 메우기 위한 기술 진보가 나타나게 된다.
자본주의는 전쟁을 욕망한다. 인간이 자본만을 옹호하면 전쟁은 필연이다. 자본 그 자체에는 선악이 없다. 인간의 탐욕이 자본주의 정신을 하락시키고 하락을 만회하기 위해 인간의 파괴를 획책한다. 인간의 목숨 값이 모든 것의 최대치이기 때문이다. 즉 전쟁은 인간이 만들어낸 기술이다. 자본 증식을 위한 패권국만의 연금술과도 같은 기술... 인간의 욕망이 끝없는 부를 갈망하는 한 연금술의 실질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러한 갈망은 영원히 해갈되지 않을 것이다. 파괴되지 않는 욕망을 파괴하라는 것은 신적욕망이기에 인간에게 있어서 자본주의의 다음 세계는 자본의 파괴가 아닌 넘어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