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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 Lee Mar 07. 2016

작업치료

맞춤형 치료의 시작

대개 언어치료와 함께 진행되는 작업치료(Occupational Therapy)는 J가 일상생활하는데 있어 특히 힘들거나 앞으로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영역에서 향상된 결과가 나타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 것이었다. 언어치료보다는 비중이 덜하고 몇 번 받지 못했지만 기본적으로 실제로 응용할 수 있는 많은 조언을 얻을 수 있는 치료였다.


J의 경우 다소 우려되는 영역은 소근육 운동 지연(fine motor delays) 가능성이었다. 아직까지 수저 사용이나 연필 잡는 법 등은 어색하지만 대세에 지장이 없는 한 크게 교정하려고 시도하지는 않고 있다. 아무튼 당시에 작업치료에서 주목했던 것은 매우 잦은 분노발작과 전환과 의사소통의 어려움과 같은 행동 문제였다. 곧 있으면, 학교에 가야 할 J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과 도망가기 혹은 내달리기 등의 위험한 행동으로 인해 모두 신경이 곤두선 상태였다. 당시 J는 보통 7시 반 정도에 일어나서 8시 반부터 4시 반까지 데이케어에 다녔는데, 평상시는 괜찮지만 뜻대로 안 되면 심한 분노발작을 부리곤 했을 때였다.


당시 J를 담당했던 작업치료사는 치료를 수행하면서 많은 긍정적인 측면을 찾아서 알려줬다. 그중에는 J가 점점 더 사람을 많이 쳐다보고 한글과 영어를 모두 잘 읽을 수 있다는 점, 기억력이 매우 좋은 점과 글자, 숫자, 단어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이고 구구단 암기하는 것은 물론이고 TV에 등장하는 캐릭터 중에서 까이유(Caillou), 맥스 앤 루비(Max & Ruby), 뽀로로 등을 좋아하고 도라(Dora the Explorer)와 디에고(Go, Diego, Go)는 싫어하는 것 등을 들었다. (이 외에도 둘리를 좋아했었는데, 무서운 에피소드 하나로 그만 가장 싫어하는 캐릭터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도라에몽(Doraemon)을 좋아한다.) 만화 캐릭터에 대한 호불호가 어떻게 긍정적인 것이 되는지는 아직도 궁금하다. 재미있는 사실은 J가 싫어하는 캐릭터들은 모두 크고 동그란 눈을 가지고 있어 아마도 J가 크고 색깔 있는 눈을 무서워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문밖에만 나가면 다 그런 류의 사람들이니 얼마나 무서운 세상에 살게 했단 말인가?)


이처럼 관찰 내용이 모두 긍정적인 것만 있으면 참 좋겠지만 당시에 목격된 부정적인 것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 이었다. J는 주목할 수 있는 시간이 짧고 싫어하는 것에 대한 반응이 매우 극단적이며 도망가려는 경향을 보인다. 시끄러운 소리 특히, 울음소리에 민감해서 데이케어에서 우는 아이를 공격하는 일도 있었다. 소리의 경우 환풍기 돌아가는 소리를 유독 싫어하기도 한 점 등 주로 감각을 처리하는 측면에서 보이는 행동상의 문제들이었다. J는 기본적으로 오른손을 주로 사용하여 글자를 쓰지만 잡는 것이 서툴러서 핸드 오버 핸드(OHO)를 통해야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쓸 수 있었다. 글자와 숫자를 매우 잘 이해하고 있고 강한 흥미를 보이는 것을 볼 때, 하이퍼렉시아(hyperlexia, 초독서증)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J는 반향언어를 주로 사용했고 가끔씩 우리가 하는 말을 흉내내기도 했는데 언어 습득에 도움이 되는 방식은 아니었다. 고집이 센 편이라서 하고 싶은 것은 무조건 해내려고 했다. 플레이도(Play Dough, 밀가루 반죽 느낌의 찰흙 같은 놀이기구)와 같은 감각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은 좋은 점으로 간주되었지만 어떤 일을 할 때, 그것이 J가 좋아하는 일이라도 계속해서 주의를 환기시켜야 할 필요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또한 단순한 지시는 따라 할 수 있었지만 여러 단계가 필요한 지시에서는 첫 번째가 맘에 들지 않으면 그다음은 그냥 무시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래도 J는 색깔, 크기, 이름, 기능 별로 사물을 정렬하는 면에서는 좋은 결과를 보였는데, 어찌 보면, 장점이라고 할 것이 아니라 자폐증의 기본 증상에 항상 등장하는 내용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자폐성 장애아를 대상으로 하는 작업치료에서는 감각 프로파일(Sensory Profile)이라는 기법을 통해 자폐성 장애아의 감각적 민감성을 평가하고 치료 계획을 세우는 것이 일반적인 것으로 보였다. 작업치료에서는 문제 행동의 원인이 감각적인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이유에 의한 것인지를 확인하는 작업으로 이 기법을 사용하는데,  J의 경우에는 감각 프로파일이 다음과 같이 나타났다.


1. 감각 추구(Sensory Seeking): 작업치료에서는 문제행동을 보이는 이유 중에 하나로 특정 감각을 추구하는 경향을 꼽는다. 즉 가구에 올라가고 위험한 행동을 하는 것은 그런 행동으로 감정이 고조되기 때문에 위험한 행동을 추구하는 것으로 본다.

2. 감정적 반응성(Emotionally Reactive): 매우 고집이 세고 분노발작을 보인다. 또한 친구를 사귀는 것이 어렵다.

3. 낮은 근력(Low Endurance/Tone): 대근육 운동에는 문제가 없지만 소근육 운동에는 약간의 문제를 보였다. (근육에서 있어 낮은 톤(low tone)이란 어떤 운동을 하는데 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이완된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4. 부주의/산만(Inattention / Distractibility): 주의력을 포함하여 가장 심각한 문제로 요구에 불응하려는 의지와 틱장애 행동과 같은 가까운 다른 것에 더 관심을 보이는 것이 조합되어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5. 감각 입력 결손(Poor Registration): 고통에 강한 내성을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누가 방에 들어오는 것도 무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6. 이 외에 구강 감각 민감도(Oral Sensory Sensitivity), 앉아 있기(Sedentary), 소근육(Fine Motor), 지각(Perceptual) 등에서는 정상적인 기능을 보였다.


감각처리 측면에서는 다음과 같은 평가가 있었다.

1. 청각 처리(Auditory Processing): 울음소리를 싫어하고 특정 소리에 방어적인 자세를 보임.

2. 평형감각(Vestibular, 내이 균형): 하루 종일 움직임을 추구하고 예상되는 행동을 방해하며 제자리 돌기 등의 문제행동으로 나타난다.

3. 촉각 처리(Touch Processing): 이 닦기와 머리 깎기를 싫어하고 고통에 대한 높은 내성, 손과 옷이 더러워지는 것을 싫어하는 것 등이 보임. (정확하게는 물에 젖는 것을 싫어했다.)

4. 다중 감각 처리(Multi Sensory Processing ): 익숙한 곳에서도 길을 잃은 것으로 보이며, 집중이 어렵고 발끝으로 걷는 증상을 보임.

5. 이 외에 시각, 미각 처리에서는 정상적인 기능을 보임.

6. 조정(Modulation): 놀이 중 오르기, 점프하기 등 위험한 행동을 찾음. 행동이 감정적으로 흥분을 유도함. 표정이나 몸짓을 통한 언어 이해 능력이 제한적임.


행동 및 감정 반응 측면에서 J는 일반적으로 고집이 세며 비협조적이고 좌절에 대한 내성이 낮고 계획, 기대, 일상의 변화에 내성이 제한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감각 프로파일, 부모 증언, 임상 관찰 등을 바탕으로 J에게 있어 감각적으로 필요한 것을 총체적으로 분석했다. 먼저 J를 '찾는 사람(Seeker)'로 정의할 수 있다고 했다. 이것은 자신이 원하는 감각의 입력을 추구하는 활동을 보이는 아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감각의 입력에 있어 문턱치가 높아 어떤 감각을 인지하기 위해서는 보다 강한 자극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고통에 대한 강한 내성을 보여 전형적인 아이들이 고통을 느끼는 정도의 자극에도 반응이 없다. 따라서 J는 구조화된 방식으로 필요한 자극을 제공받아야 하는데, 그 자극은 자주 강하게 있어야 한다. 감각 중에 가장 필요로 한 것은 평형감각과 운동으로 오르기와 달리기로 해결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때 작업치료사가 제시한 향후 조언은 J가 학교생활을 수행함에 있어서 매우 도움이 된 것들이다. 그는 대근육 운동을 정기적으로 제공하는 감각 다이어트(Sensory Diet)를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감각 다이어트란 감각을 일종의 식품으로 간주하여 영양소가 부족하지 않게 잘 준비된 식단을 시행하는 것처럼 감각도 골고루 부족한 것은 좀 더 강조해서 섭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J의 감각 다이어트에는 반 학생 전체가 낮은 정도의 짧은 몸풀기 같은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통해서도 성취할 수 있다. 또한 정적인 써클타임(circle time, 매일 아침마다 정규 수업이 시작되기 전 둘러앉아 간단하게 갖는 모임을 말한다.), 책상에 앉아서 이루어지는 활동 등이 있기 전에 운동 휴식(Movement Breaks)을 갖는 방법도 적용할 수 있다. J는 보다 긴 시간, 더 강한 운동 시간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점심시간이나 휴식 시간을 좀 더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 시간에 J가 가장 갈망하는 달리기, 오르기 등을 제공하여 감각 다이어트를 실시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작업치료사가 제시한 보다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1.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질 때는 푹신한 쿠션이나 공의자를 사용하여 앉아 있는 동안에도 계속적으로 활동적인 감각이 입력되게 하면 써클타임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바닥에 깔린 카펫의 알파벳에 큰 관심을 보이기 때문에 글자가 새겨진 작은 카펫 조각을 이용한 환경을 제공한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2. 출석부를 교무실에 전달하는 일이나 재활용 종이를 걷어 제출하거나 연필 깎는 일 등의 활동을 통해 학습에도 도움이 되면서 운동의 혜택도 볼 수 있다.

3. 자신의 활동을 선택할 수 있게 한다. 대운동 휴식(Big Movement Breaks)과 같은 미리 정해진 시간으로 한정하여 잡기놀이, 숨바꼭질 같은 놀이를 할 수 있게 해주면 특정 활동을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J가 이런 놀이를 하면서 쓰는 말이 바로 "나, 술래"인데, 영어로는 "You're it."이라고 해야 하지만 J는 "I'm it."이라고 한다.)

4. 점프와 오르기 감각 다이어트를 위해서 작은 개인용 트램펄린이 도움이 될 것이다.

5. 이 외에도 주변의 과도한 감각 입력을 감당하기 어려울 때를 대비해 자료실에 개인용 텐트를 준비해서 J가 힘들어 할 때 들어가 쉴 수 있게 해주었다. 나중에 J한테 왜 텐트에 들어가냐고 물었는데, 그 대답은 "It's too cold. 너무 추워서"였다. (역시 자폐증은 너무 이해하기 어렵다!)   


그리고 작업치료사가 강조한 것은 J의 경우 감각 다이어트가 보상이나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 용도로 사용되어는 안 되며 순수하게 필요한 감각을 채워주는 방식으로 이용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수단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작업치료는 치료 대상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일 수 있는 것으로 오랜 관찰과 전문가의 조언 등이 조합되어야 최적의 효과를 낼 수 있는 계획의 수립이 가능하고 그에 못지않게 실천이 따라야 하는 것이다. 자폐증의 원인이 다양하듯 효과를 볼 수 있는 작업치료도 다양할 수밖에 없다. 작업치료를 받으면서 느꼈던 것은 치료를 통해 무조건 학교에서 원하는 바른생활 아이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상태를 그대로 인정하면서 가장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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