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원했던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해주는 치료
일반적인 언어치료와 작업치료는 이론적인 설명도 많이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J에게 맞춰 진행된 치료를 중심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개인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동일한 이론과 목표에 입각한 치료가 수행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J는 스트랫퍼드 종합병원의 언어치료사인 데비로부터 첫 언어치료를 받았다. 이 병원에는 작업치료사인 고드도 있었는데, 역시 J의 첫 작업치료사였다. 일단, 언어나 작업 치료실에 가면 신기한 것이 상당히 많다. 평소에 잘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장난감도 많고 한 번 해보거나 타보고 싶은 것들도 있었다. 어쨌든 이 두 가지 치료의 공통점이라고 하면 치료 대상 장애아의 관심을 유도하여 원하는 것과 치료를 교환하는 형식이다. 그래서 치료 대상 장애아의 관심을 유도하는 것이 첫 번째 목표라서 반응형 장난감을 많이 사용했다. 예를 들면, 퍼즐을 맞추면 불빛과 소리가 나는 장난감과 비눗방울, 풍선 등과 같이 리액션이 강한 장난감을 많이 사용했다. 작업치료의 경우에는 치료라기보다 놀이였는데, 주로 공간을 활용하여 높은 곳에 있는 물건을 잡거나 매달리기 등의 동작이 있었고 실내용 작은 트램펄린을 두고 뛰는 것도 있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이런 놀이 하나하나가 모두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정교하게 계획된 것들이었다.
또 하나 언어치료사인 데비에게 고맙게 생각하는 것은 정말 적극적으로 온타리오 아동 및 부모 자원 연구소(CPRI) 및 기타 관련 기관에 연락하여 ASD 진단 약속을 주선해주었다. 또한 J가 목욕할 때 특히 몸에 물이 묻는 것을 싫어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비롯하여 일상생활에서 닥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작업치료사와 긴밀하게 연락하며 맞춤형 대응방식을 찾고자 했다. 그리고 주고받기 놀이는 물론이고 뭐든지 그냥 원하는 것을 갖게 하지 말고 원하는 수준의 의사소통 표현을 하도록 했다. 말을 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우선 목표였지만 안 되면 그림 카드를 가져와서 바꾸거나 수화라도 하게 하려고 했다. 사실, 데비는 혹시나 J가 말을 못 할 경우를 생각했는지 수화를 가르치려고 노력했다. 우리도 수화를 배워야 할지 몰라 걱정도 되었는데, 다행히도 수화를 할 필요는 없었다. 수화야 말로 전 세계적으로 공통되는 표준어를 만들 수 있는 영역 같은데, 아쉽게도 지역마다 다른 수화를 한다고 한다. 만약 수화가 단일화된다면 전 세계 사람들이 최소한 손동작으로 소통할 수 있을 것이고 국경, 장애/비장애를 넘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장면은 치료가 시작되고 2~3주 후에 데비는 J가 ASD일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하면서 거의 울기 직전까지 갔었는데, 사실 우리는 그때까지만 해도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알지 못해서 왜 그런 과장된 감정표현을 하는지 몰랐다. 하지만 내가 ASD 진단을 직접 받을 때 나중에 보니 여러 ASD 경우를 본 경험이 있는 데비 입장에서는 앞으로 닥칠 많은 어려운 문제가 떠올라 그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당시 데비가 어떤 기분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도 대개 언어치료를 처음으로 시작하여 ASD 세계에 입문하는 걸 볼 때, 자폐증의 여정에 있어 차이를 만들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사람 중에 한 명을 언어치료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다행히도 경험과 지식을 겸비한 치료사를 스트랫퍼드에서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언어치료를 위한 많은 도구들이 사실은 되게 비싸다. 간단한 장난감들도 언어치료 등급이면 2~3배 더 비싼 것 같았다. 간단해 보이는 그림 조각들도 왜 그리 비싼지 모르겠다. 일단, 시도하기로 한 그림교환 의사소통 시스템(PECS)을 위해 많은 그림 조각들이 있어야 했다. 데비는 J가 좋아하는 것들은 물론이고 같이 노래 부를 때 사용할 수 있는 좋아하는 노래 그림 등을 만들어 주면서, 벨크로(찍찍이)를 이용해 벽면에 부착하거나 낡은 탁상달력에 부탁하여 휴대성을 극대화하여 일관되게 이용할 것을 권장했다.
언어치료는 자폐증 진단을 받고 나서도 계속되었는데, CPRI의 언어치료사인 조앤도 J를 위한 맞춤형 접근방법을 제시했다. J가 관심을 갖는 물건을 지니고 있도록 하여 말을 배우고 사용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만들 수 있다는 것이 기본적인 조언이었다. 또한 J가 좋아하는 놀이(자석글자, 물놀이용 글자 등등)에 적극 참여하고 마룻바닥이면 시선을 낮추는 등 동일한 시선을 유지할 것을 강조했다. J와 말할 때는 과장된 행동과 표현을 사용하여 비록 최초 몇 초에 그치더라도 관심을 유도해야 한다고 했다. J가 혼자 할 수 없고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놀이나 활동을 찾아 상호작용을 유발하는 방법을 사용하기 위해 비눗방울 놀이, 태엽을 감아야 하거나 팽이처럼 어른이 돌려줘야 하는 장난감, 풍선 불기 등을 추천했다. 이런 방법은 J가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의사소통을 시도하게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노래를 부를 때에도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노래를 골라 같이 부르면서 J가 나머지 소절에서 노래를 혼자 부를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법도 있었는데, 영어 동요가 서툴러서 대략 잘 실천할 수는 없는 난감한 주문이었다. 참고로 추천했던 노래는 "Row Row Row Your Boat"같은 노래였다. 한국어로는 "리자로 끝나는 말"이 이 노래다. 또 J가 관심을 가지고 좋아하는 장난감을 모두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치워 한 번이라도 더 도움을 요청하게 만드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과 함께 퍼즐 맞추기 할 때, 일부 조각을 가지고 있다가 J가 필요한 시점에 "Another piece, please. 다른 조각 주세요."라는 말을 하도록 유도한다. J가 하는 일을 따라 하다가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면, 새로운 동작을 추가해 따라 할 수 있는 기회를 조성한다. 이 외에도 관련 서적을 추천해주었는데, 펀 서스먼(Fern Sussman)이 쓴 "More Than Words"도 있었다. (사실, 이 책은 10만 원도 넘는 고가라서 본 적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