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몽골 사람에게 가족이나 다름없다. 그 넓은 초원을 말이 없다면 어떻게 이동했으며, 이리저리 달아나는 양들을 어떻게 몰고 다녔으며, 한 해에도 너덧 번씩 꾸리는 이삿짐은 어떻게 실어 날랐겠는가.
사람이 언제부터 말을 길들여 타게 되었을까.
몽골의 전설에 말은 원래 하늘에 살았다. 밤마다 말들은 하늘에서 나무를 타고 지상으로 놀러 왔다. 어느 신령한 승려의 말에 따라 큰 나무에 올무를 놓아 말들을 붙잡았다. 그 말들을 길들여 타고 다니기 시작했다. 북방의 천손 설화에는 말들이 대개 날개를 단 천마로 등장한다. 바람을 일으키며 초원을 달리는 말이 하늘의 존재라 여겼을 터였다.
실제로 몽골 고원에는 말의 조상이라는 타히(Takhi)가 살고 있다. 말보다 덩치도 작고, DNA 염색체 구조도 둘이나 다르다. 프랑스의 벽화에도 등장하는 타히는 사람이 길들여 타고 다니게 되는 최초의 말이다. 한때 멸종되다시피 한 타히는 몽골 정부의 노력으로 현재 호스타이 국립공원과 고비알타이, 자브항 아이막의 보호구역에서 300여 마리가 살고 있다. 이밖에도 야생 당나귀인 ‘홀랑’도 살고 있다.
몽골 말의 전설은 도처에 널려 있다.
칭기즈칸이 20만의 병사들로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던 데에는 몽골 말의 공이 크다. 그 가운데서도 ‘조로머리’라는 말이 있다. 조로머리는 좌우의 두 다리를 엇갈려서 사람이 걷듯 달린다. 이렇게 달리는 말은 오르내림이 적어 말 위에서도 안정되게 활을 쏠 수 있다. 쫓아오는 적들을 향해 말 위에서 몸을 뒤로 돌리고 활을 쏘는 병사의 모습은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고구려 무용총 벽화(舞踊塚壁畫)에 보면 몸을 뒤로 돌린 채 사슴을 향해 활을 쏘는 장면이 나온다. 이에 비해 위아래로 오르내리는 말을 탄 서양의 기마병들은 기다란 창을 쓸 수밖에 없었다.
몽골에는 말에 관한 말이 많다.
말은 타 봐야 알고, 사람은 사귀어 봐야 안다. 종에게는 주인이 많고, 지친 말에게는 채찍이 많다. 밥 먹으러 갈 때는 준마처럼 날쌔더니, 일하러 갈 때는 가로놓인 돌처럼 무겁다. 좋은 말은 보조를 맞추고, 된 사람은 말(言)을 지킨다. 우는 말이 있으면 차는 말도 있다.
말에 관한 금기도 많다.
몽골 말을 탈 때는 왼편으로 타야 한다. 어려서부터 그렇게 훈련을 시켜서 오른편으로 다가가면 말이 놀라서 발길질을 한다. 말에 안장을 얹으면 반드시 타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말 주인이 죽는다고 믿었다.
몽골 사람들은 변소에 갈 때, 말을 보러 간다고 한다. 우리 식으로 하자면, 볼일 보러 간다는 격이다. 그만큼 몽골 사람들은 말을 아끼고 세심하게 돌본다는 뜻이다. 여자들이 변소를 갈 때는 ‘꽃 따러 간다’고 한다. 낭만적이지 않은가. 요즘 여학생들이 거리낌 없이 선생님에게 ‘똥 싸러 간다’고 말하는 것에 비한다면 말이다.
말을 탈 때는 안장이 중요하다. 몽골 사람들은 안장도 없이 타기도 하지만, 초보자에게는 안장이 필요하다. 자신의 체형에 맞는 안장을 준비한다면 바람직하겠지만, 그런 여행자들이 어디 있겠는가. 몽골에서 본격적으로 말을 달릴 사람이라면 자신의 안장을 장만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내친김에 자신의 말을 살 마음이 있는가. 말이라고 아무 말이나 타는 것은 아니다. 짐을 싣는 말과 사람이 타는 말이 다르다. 사람이 탈 만한 말의 가격은 30만 뚜그릭 정도이다. 나담축제의 경주에서 우승한 말은 몇 천만 원을 호가한다.
몽골의 말은 국외 반출이 어렵다. 몽골에서 자신의 말을 산다면 몽골 친구나 유목민에게 맡겨야 할 것이다.
말을 타고 여행을 할 사람이라면, 말을 사서 여행을 마친 후에 되파는 수도 있다. 이럴 경우에는 말을 잘 다룰 수 있으며, 말을 고르는 안목도 있어야 한다. 초보자라면 말뿐이 아니라 마부도 빌려야 한다. 그래야 말에게 먹이도 주고, 말의 땀도 닦아 줄 수 있다.
처음 말을 타는 사람들은 마부의 지시에 잘 따라야 한다. 기분에 들떠 혼자서 달리다가 큰 사고가 나기도 한다. 체중에 따라 골라주는 말을 타야 하며, 가파른 산길을 트레킹할 때도 흰 말, 검은 말, 얼룩말 따지며 우기지 말아야 한다. 말들 사이에는 서열이 있고, 친소관계가 분명하여 그 성향을 잘 아는 마부가 골라주는 말을 군말 없이 타야 한다.
말을 탈 때는 고삐를 잘 쥐어야 한다. 고삐를 넉넉히 풀어 주고 치켜들면 말은 자유롭게 달리라는 신호로 여긴다. 고삐를 바짝 쥐고, 안장을 붙든 채 아무리 달리라고 해도 달리지 않는다고 투덜거리지 말라. 말은 말이 통하지 않지만 그런 신호를 멈추라는 신호로 여긴다.
말을 달리게 하려면 바짝 당겼던 고삐 줄을 탁 놓아주며 ‘초(chuu)'라고 외치면 된다. 채찍이나 다리로 말의 몸을 차면 더 빨리 달리게 될 것이다. 말이 속도를 높이면 두 다리를 모아서 겅중거리며 뛰게 되는데, 그때 말의 오르내리는 동작에 따라 사람도 함께 보조를 맞춰 주어야 말이 힘들어하지 않는다. 전속력으로 달릴 때에는 두 발에 힘을 주고 서서, 말 등에 자신의 체중이 실리지 않도록 해 주면 좋다. 자전거를 타본 사람이라면 의자에서 몸을 떼고 페달을 밟은 채 버쩍 서서 타던 자세를 생각하면 될 것이다. 말을 세울 때는 만국 공통이다. 고삐를 바짝 잡아당기면 된다.
말은 영리하여 자신이 태운 사람의 수준을 귀신같이 눈치챈다. 자신이 태운 사람이 초보의 관광객이라면 힘들여 달릴 생각을 않고 풀만 뜯어먹는다. 처음 테를지에서 말을 탈 때의 일이다. 시간에 5 달라를 타게 된 말은 내가 아무리 "추추"니 "이랴"를 외쳐대도 콧방귀만 뀌며 풀을 뜯어먹었다. 몽골 마부가 다가오면 몇 걸음 뚜벅거리다가 멀어지면 다시 풀을 뜯어먹었다. 내가 박차를 가하며 소 몰듯 "이랴" 소리를 냈더니 코 대신 엉덩이로 방귀를 뀌었다. 마이동풍(馬耳東風)이라는 말이 거저 나온 말이 아니다.
말이 무섭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해서 고삐를 바짝 조이지 못한 채 풀을 뜯어먹도록 했다가는 초원을 달리기 어렵다. 우선은 말을 장악해야 한다. 고삐를 다소 거칠게 잡아당겨 말에게 내가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신호를 주어야 한다.
몽골의 말은 보기에 만만하다. 키도 작고 아담한 것이 제주도 조랑말을 닮았다. 체구가 작다고 만만하게 보다가 큰 코를 다치는 사람이 많다. 기마병 20만을 얹고 바람처럼 달려가 200만의 적을 들풀처럼 무너뜨리던 제국의 말들이다. 제국의 지존 칭기즈칸도 말에서 떨어져 죽게 되었다. 몽골 여행을 할 때면 비상금으로 200만 원을 여축해 둔다. 말에서 떨어져 다치면 꼼짝없이 헬리콥터를 불러 울란바토르로 후송해야 한다. 헬기 부를 때 쓸 돈을 남겨 놓든지, 말을 우습게 보지 않든지 선택해야 한다. 특히 관광객들을 위해 길들여진 말이 아니라, 유목민의 말을 함부로 얻어 타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2007년 EIDF에서 대상을 받은 다큐멘터리 영화 ‘푸지에’에서도 달아난 말을 찾으러 갔던 푸지에의 엄마가 말에서 떨어져 죽는다. 걸음마보다 말 타는 것부터 배운다는 몽골 사람들도 말에서 떨어지는 일이 적지 않다. 전속력으로 달리던 말이 초원에 여기저기 뚫려 있는 타루박의 구멍에 다리가 빠진다면 제 아무리 잘 달리는 말이건, 말을 잘 타는 사람이건 크게 다치게 되어 있는 일이다.
그동안 몽골 여행을 하면서 말을 타 보았지만 사고를 당한 적은 없었다. 초행자들은 마부가 고삐를 끌고 천천히 걷고, 말에 능숙한 사람에게만 고삐를 내어 주었다. 처음에는 그걸 수긍하던 초행자들도 바람을 일으키며 초원을 달리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바뀌기 마련이었다. 마부에게 고삐를 놓아 달라고 떼를 쓰게 된다. 오르혼에서 몇몇 여행자들의 호소에 못 이겨 해서는 안될 결정을 했다. 초행자들에게도 고삐를 넘겨주라고 했더니 가이드가 펄펄 뛰었다. 내게 책임을 지겠다는 각서를 쓰란다. 나를 간절히 바라보는 여행자들의 눈길을 저버릴 수 없어 그러마고 했다. 여행자들은 떼를 지어 초원을 함께 달렸다. 다행히 아무 사고도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무모한 일이었다.
사고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오르혼을 떠나 테르힝차강 노르에서 다시 말을 타게 되었다. 차강노르에서 호르고 분화구까지 트래킹을 할 때였다. 테르깅차강노르의 말들이 거칠다는 이야기는 얼핏 들었지만 마부들은 별다른 주의를 주지 않았다.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호수는 장쾌했지만 가파른 길을 오르내리는 말 등에 앉아 있는 것이 편치 않았다. 시원하게 달리는 것도 아니고, 먼지를 뒤집어쓰며 터덜터덜 걸어가는 길은 따분했다. 힘이 든 말들은 늑장을 부리다가 채찍을 휘두르는 마부가 다가오면 기겁을 해서 내달렸다. 언덕에서 평지로 내려와 말들이 걸음을 멈추고 한자리에 모였을 때였다. 한 여성 여행자를 태운 말이 천천히 무리 틈으로 다가오는가 싶더니 느닷없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무어라 제지할 틈도 없이 뛰쳐나가는 말 등에서 여행자가 기우뚱 균형을 잃는가 싶더니, 이내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두어 차례 구른 여행자는 한동안 정신이 없었다. 머리에 불룩하니 혹이 났을 뿐 별다른 부상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충격을 받은 여행자가 자신이 왜 여기에 왔는지를 기억하지 못했다. 함께 여행한 사람도 몰라보았다. 혹이 난 머리가 걱정되어 급히 인근의 병원으로 옮기려 했다. 가장 가까운 병원이 6시간쯤 가야 하는데, 그곳에서도 제대로 된 진료를 보장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런 중에 말에서 떨어진 여행자가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충격과 놀라움으로 나타난 일시적인 기억상실인 듯했다. 다행히 농담도 주고받을 정도로 회복되었다.
마부들의 말로는 여행자가 쓰고 있던 모자에 말이 놀란 것이라 했다. 내 짐작으로는 채찍을 든 마부나, 자신과 사이가 좋지 않은 말이 다가오자 놀라 달아난 게 아닌가 싶었다.
말은 감성이 풍부하고 예민한 동물이다.
말은 조그만 소리나 빛깔에도 신경질적으로 반응한다. 말을 탈 때에는 번쩍거리는 장신구나, 바람에 너풀거리는 모자와 머플러를 해서는 안 된다. 말이 놀라서 사람을 떨어뜨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말을 타고서 카메라를 찍거나, 휴대용 오디오를 들어서도 안 된다. 셔터 소리나 음악 소리에 말이 놀랄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허리춤에 매단 금속제 컵이 달그락거리는 소리에도 놀라는 말이 있다. 놀라면 말은 전속력으로 내달리거나, 두 발을 들어 사람을 떨어뜨리려 한다. 말을 탈 때는 등자에 신발의 코 부분만 살짝 걸치는 것이 좋다. 행여 말에서 떨어질 때, 신발이 등자 고리에서 빠지지 않아 말에 끌려가게 되면 큰 변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말을 타고 초원을 달리는 기분은 무엇에 비할 바 없이 멋지지만, 고집을 부려 서두를 일이 아니다. 말 타다가 헬기 타는 일은 없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