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동 프로젝트
학교를 다닐 때도 출근을 할 때도 매일 같이 지나던 길인데 떠날 때가 되니까 괜히 아쉬워서 담아봤습니다.
오랜 시간 제 밥상을 책임져주던 우리 동네 작은 마트입니다.
언젠가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던 어른이 계셨어요.
그 분과 저는 오랜 시간 외국으로 파견을 가있었는데요.
자유롭지 못한 공간에서 오래 함께 있다보니 사람에게 받는 스트레스에 민감해지더라고요.
다양한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이 사람과 나 사이에 거리가 너무 좁다보니 그랬던 것 같아요.
그 기간이 8개월 이었는데, 그 8개월이 끝나갈 때쯤 그 어른께서 저와 동료들을 모아두고 이런 말을 했어요.
우리가 이 곳에 오기 위해 두 달을 준비했고, 이 곳에서 여섯 달을 보냈고 이젠 두 달이 남았다.
이제는 떠날 준비를 해야하지 않겠어?
도저히 무슨 말인지 저는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돌아가면 일상인데 뭘 준비하자는 건지. 돌아가면 너무나 평온한 나의 일상으로 돌아갈텐데!
이상하게 머릿속을 맴돌던 그 말은 정확히 2년이 지나 교환학생이 끝나갈 때쯤 이해가 되었습니다.
너무나 당연히 그 자리에 있을 것 같던 일상이 떠나있던 나에게는 일상이 아니라 새로운 여행이 되어있다는 것을 2년이 지나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돌아갈 준비, 떠날 준비가 더 어렵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단 한 번도 떠날 준비를 잘 한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오래 머문 도시를 떠날 준비,
즐겁게 일했던 직장을 떠날 준비,
나에게 너무 많은 기회를 주었던 학교를 떠날 준비,
이제는 내가 사랑하는 동네를 떠날 준비까지요.
떠난다라고만 보면 되게 슬프게 들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떠난다는 것은 새로운 시작을 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쉬움 가득하면서도 설레는 순간이 아닐까 합니다.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그 어른께서 해주었던 그 말도 우리가 그 곳에서의 여덟 달을 위해 두 달을 준비했듯이 얼마가 될지 알 수 없는 일상으로 복귀를 위해 적어도 그만큼은 준비해야하지 않을까하는 경험어린 조언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20대의 절반을 함께 보낸 혜화동은 그 자체가 저의 모습을 닮아있고 또 제가 이 동네를 닮았습니다.
이 동네를 떠날 준비를 하는 것이 저의 한 페이지를 넘기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 그 때문일 것 같습니다.
나를 잘 표현하고 있는가? 이 동네가 어떠했는지 들춰보고 기억하는 것이 저의 한 면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한 가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떠날 준비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 방법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7년을 이 곳에서 머물기 위해 앞선 준비가 있었듯 얼마가 될지 알 수 없는 새로운 곳에서의 일상을 위해 한 장 한 장 떠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