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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ke Mar 04. 2020

비행기의 진상 승객

눈쌀은 찌뿌려지지만 가슴은 먹먹해진다.

그를 보았다. 베트남 하노이 여행을 마치고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말이다. 비행기 탑승하는 과정에서 짐을 올리고 있었다. 그가 좁은 비행기 통로를 막은 덕분에 수많은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이나 숨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짐은 또 왜그리 많은 건지. 기다리는 우리는 인내심에 한계가 온다. 그래서 그가 좀은 이기적으로 보여 눈쌀이 찌푸려진다. 기다리는 사람을 위해서 잠시 길막을 풀고 대기 했다가 사람이 지나가면 짐을 다시 정리하면 될 것을 굳이 짐을 다 정리하고 선반에 올리려 한다. 원망의 분위기를 감지 해서인지 기다리는 줄을 향해서는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보다 못한 승무원이 사람들이 지나가도록 잠시 길을 비켜달라고 예의 그 상냥한 목소리고 말을 걸어보지만 들은 척도 안한다. 막무가내이다.  막무가내인 그를 승무원이라고 뾰족한 수가 있겠는가?  승무원도 설득을 포기하고 그가 빨리 끝나기를 기다렸다. 대기하는 줄의 우리와 함께.


 보통 이기적으로 보이는, 타인에 대한 배려없는 상황을 우리는 살면서 꽤 겪지만 이번 건 좀 색다른 상황이라 눈길이 갔다. 웬만한 사람은 이런 상황이 오면 서둘러 움직여 급한 척을 한다거나 표정으로 미안한 척이라도 내비치는데 그는 무표정에 행동도 천천히 했다. 급하게 서둘다 실수하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신중하고 세심하게 짐을 정리하고 선반에 넣었다. 그의 그런 행동 양식은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어느 순간 원망을 넘어 그의 행동을 관찰하게 만든다. 이윽고 그의 성스런 장인정신이 느껴지는 짐 정리가 끝나고 모세의 홍해가 갈라지듯 길이 터지자 대기하던 줄은 재빨리 자신의 자리를 찾아갔다. 우리를 기다리게 한 그에게 보란듯이 승객들 모두 한마음으로 하나같이 재빠르게 후다닥 선반에 짐을 넣고 정리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끝났다. 그리고 비행기가 이륙했고 한참동안 그는 내 관심에서 잊혀졌다.


 그러다 다시 그를 본 것은 비행이 시작된지 한참지난 다음이었다. 또 통로에 일어서서 누군가에게 말을 하고 있었다.  힘든 이코노미 좌석에서 좀체 잠을 들지 못하는 나는 그에게 관심이 갔다. 중늙은이 정도 될까? 아니다 나이가 꽤 있어 보인다. 언뜻 봐서는 알아채기가 힘들다. 자세히 보아야 그의 실상이 보인다. 누가 봐도 분명한 염색을 한 머리이다. 염색도 미용실의 전문가 솜씨가 느껴지는 세련된 것이 아닌 누가봐도 진정한 검정, 새까만 색이다. 내 어릴적 아버지의 색이다. 그 옛날 우리 아버지가 색이 진하고 잘 지워지지 않고 오래간다고 애용하셨던 염색약이 동성제약의 양귀비였다. 그것을 사러 약국으로 심부을 꽤 다닌 나는 여전히 그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바로 그의 머리색은 그 양귀비로 염색을 한 것 같은 까만 머리이다. 그의 얼굴의 주름과 체형과는 전혀 매치가 되지 않는 까만색이다. 이제 그를 양귀비라고 부르겠다.  


 좀 더 관찰해보니 가족들과 온 것 같았다. 그리고 뭔가를 설명하거나 불편한 것이 없는지 확인하는 모양새였다.  가족은 양귀비 자신, 그의 부인, 그리고 철없어 보이는 아들하나로 보인다. 그래서 그렇게 양귀비가 단도리를 해야 했던 짐이 많았나 보다. 부인을 보면서 내가 짐작한 양귀비의 연령대를 확신할 수 있었다. 부인은 확실히 50대 후반이나 60대로 보였다. 그런데 문제는 아들의 나이였다. 아들은 10대 소년이었다. 어림잡아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로 보인다. 아들이 아니라 손자일수도 있겠다는 의심도 들었다. 어쨋든 겉으로 보기에는 아들인지 손자인지 애매했다. 아들은 좌석에서 자주 일어나서 화장실에 갔다. 아마 나처럼 견디질 못하는 모양이다. 자꾸 양귀비가 옆에서 수발을 드는 모습을 보인다. 어려운게 없어 보이는 좀은 조심성이 없어 보이는 아들의 행동에서 철이 없어 보였다고 나는 느꼈다. 늙은 아빠 양귀비는 비행내내 가족을 위해 안전을 확인하고 불편한게 없는지 아들의 사소한 요구에 잠시도 쉴틈없이 서비스하는 모습이 내 눈에 자주 들어왔다. 그리고 어느새 좁은 좌석의 아내와 아들을 위해 기내를 기웃거리더니 빈 좌석을 찾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래도 수시로 뒤를 살펴보며 가족을 살피는 모습이 눈에 들었다.


 양귀비의 마지막 모습은 인천공항에 무사히 도착하고 입국수속을 받는 지점에서였다. 입국하는 모양새가 여행을 그리 많이 다닌 가족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비행기에서 내리면 검역대를 거쳐 입국수속을 하고 짐을 찾아기내에서 받은 세관신고서를 작성하여 관련 공항직원에게 제출하고 문을 나오는 것이 일반적인 순서이다. 양귀비는 입국수속을 받는 자리에서부터 우왕좌왕하는 모습과 관련 정보를 찾으려는 듯이 눈이 바쁘게 돌아가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아내는 남편에게 모든 것을 맡긴 듯 도움이 전혀 되지 않아보이고 아들은 아빠의 작은 난관이 아무 상관없다는 태도였다. 그런 아들에게 양귀비는 하나하나 설명을 하고 있었다. "여기 봐봐 여기에 우리 짐을 찾는 곳이 나와", "우리 이제 여기서 내려갈거야 내려가서 짐을 찾고 나갈거야" 큰 소리로 뭔가를 전수하는 듯한 그의 교육에 아들은 건성이었지만 양귀비는 아랑곳하지 않고 정성을 들였다.


양귀비의 그런 모습에 앞선 기내에서의 행동이 이해가 되었다.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느껴졌다. 베트남에서의 양귀비의 여행은 자유여행일 것으로 짐작된다. 가족들과 비행기를 타고 해외에 나와 숙소를 정하고 찾아가고 끼니 때마다 먹이고 이동수단을 알아보고 여행지를 돌아다녔을 것이다. 나름 꽤 자주 여행을 다녔고 집사람과 여행의 수고를 나누는 나도 예상치 못한 난관과 어려움에 자주 지치는데 혼자 힘으로 여행을 감내한 그를 보니 안쓰럽고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가족을 위해서라면 가끔은 염치없고 가끔은 이기적일때도 있고 힘들고 지치고 두렵지만 나를 믿고 따르는 그들을 위해 기꺼이 온 몸으로 감내하는 아버지들의 모습으로 비춰져 오늘 무사히 양귀비가 집으로 돌아가면 그 간의 고생과 부담에서 벗어나 편한 밤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도 조용히 양귀비에게 고생하셨습니다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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