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주 11일차 : 인도 3일차
드디어 바라나시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숨돌릴 세도 없이 한 릭샤왈라(릭샤; 삼륜 오토바이 또는 자전거를 이용한 교통수단 / 왈라; 사람을 지칭)의 흥정술에 넘어갔는데 정신 차리니 이미 오토릭샤(오토바이 릭샤)에 앉아있었다. 거품이 상당히 껴있는 가격이었지만 인도에서 가장 성스러운 도시인만큼 처음은 공양한다는 기분으로 흔쾌히 냈다(물론 점점 릭샤의 물가를 알아가면서 우리가 얼마나 터무니없게 냈었는지 알게 됐다)
콜카타와는 또 다른 의미의 혼란스러운 도로를 달리곤 얼마 안 가서 기사가 골목 초입에 우리를 내려줬다. 릭샤왈라는 5분 정도 잘 걸어들어가라는 말과 함께 먼지 속으로 사라졌다. 드디어 구글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골목길과의 사투가 시작됐다.
바라나시는 크게 큰 도로가 있는 시내 구역, 갠지스 강가의 가트(강가로 내려가는 계단)와 이어지는 골목길 구역, 그리고 가트 구역으로 나눠지는데 시내 구역은 딱히 갈 일이 없다. 우리는 이래저래 헤매면서 시내 구역까지도 가보긴 했는데 그 혼란에 허덕이다가 빨리 가트로 피신해오곤 했다. 대부분의 숙소들은 가트와 골목길 인근에 있으니 이쪽에서 이리저리 둘러보면 좋다. 하지만 이곳에 문제가 있다면 골목이 너무 좁고 미로처럼 되어 있어서 길이 구글 지도에도 표시가 안 된다는 점. 그래서 웬만큼 중심 골목에서 벗어나는 곳은 대충 구글 지도에 위치만 찍어놓고 그 방향을 향해 하염없이 걷는 수밖에 없다.
갠지스 강은 인도인들에게 가장 신성한 강이다. 힌디어로 강가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신화 속 갠지스강은 인도인들에게 신앙 그 자체다. 가트에 나가면 강가에 들어가 목욕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볼 수 있다. 생각과 달리 그들의 목욕 행태는 의식에 더 가깝고 그들의 몸짓과 눈빛은 사뭇 경건하다. 그 와중에 계속해서 들러붙는 보트맨들의 "Boat, Sir?"은 정말 이곳이 성스러운 곳이 맞나 싶은 의심이 들게끔 한다.
바라나시는 가트에서 시작해서 가트로 끝난다. 크게 볼거리가 있는 도시는 아니고 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여유와 인도에서 흔치않은 고요함을 충만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바라나시다. 바라나시를 떠나고서야 비로소 그게 큰 매력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기대처럼 도시가 강렬하지는 않았지만 그 은은함이 바라나시의 진정한 매력임을 알게 된 것은 긴 시간이 흐른 뒤였다.
오늘 하루의 마무리는 보트였다. 때마침 해도 지고 있겠다, 그렇게 달라붙던 보트맨들의 흥정을 한 번은 받아줘야 할 것 같았다. 적당한 가격을 흥정한 뒤에 갠지스강에 흘려보내는 연꽃 촛불까지 사고 우리는 강의 한복판으로 내려갔다. 예상치도 못한 평화가 찾아왔다. 이런 게 바라나시의 매력일까, 온갖 번뇌와 고민들이 모두 사라지는 것 같았다. 사람으로 북적북적-거리고 온갖 먼지와 오토바이 경적 소리가 난무하던 육지는 마치 딴 세상인 것처럼, 우리의 정신은 물살을 가르는 소리와 져물어가는 태양빛에 온전히 집중됐다
특히 잊을 수 없던 장소는 바라나시에서 가장 성스러운 의식이 행해지는 마니카르니카 가트(Manikarnika Ghat)였다. 전통 방식 그대로 시신의 화장이 이뤄지는 곳으로 인도인들은 평생의 소원으로 바라나시에서 화장되는 것을 손꼽는다고 한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아그니)의 불로 화장되면서 어떤 인위적인 제어없이 하얗게 재로 변한 망자는 강가의 품 속으로 뿌려진다. 망자와 생자의 경계 위에서 죽음을 직면하는 순간이 끔찍하기보다는 되려 아련했다. 망자들이 세상 속으로 품어지는 모습은 영원히 잊히지 않을 것 같다.
복잡한 심경과 함께 또 한 번의 태양이 넘어가고 있었다.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