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주 13일차 : 인도 5일차
기차에서 밤을 보내고 일어나니 델리에 도착해있었다. 뭔가 바라나시의 고요함에 그새 익숙해진 듯 델리의 번잡함은 익숙하지 않았다. 그래도 수도라 그런지 기차역에서 시내까지 지하철로 이동할 수 있었다. 물론 사람이 무지하게 많아서 거의 끼여가다시피 했지만 지하철 덕분에 릭샤왈라들과 입씨름하는 건 피할 수 있었다. 큰 배낭을 메고 낑낑거리며 자꾸 노선도를 살피는 동양인이 안쓰러워 보였는지 어떤 중년의 인도인은 우리에게 가는 역을 확인시켜주며 잘 내릴 것을 일러주기도 했고 곧 내리긴 했지만 한 인도인 아저씨는 일어나며 다른 사람들이 자리에 못 앉도록 우리에게 자리를 지켜주기도 했다. 익숙하지 않은 인도에서의 친절에 델리의 시작은 기분이 좋았다. 다만 체력적으로 뭔가 방전된 듯 유독 이동하는데 힘이 들었다.
대부분의 인도 여행자들이 델리에서 그 시작을 잡기 때문에 델리는 모든 여행객들의 베이스캠프 같은 곳인데, 그중에서도 빠하르간지(인도인들에게는 Main Bazar가 익숙하다)는 그중 핵심이다. 수많은 환전소, 잡화점들, 식당, 숙소들로 붐비는 빠하르간지는 콜카타의 서더 스트리트보다 좀 더 여행자 거리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곳이었다. 델리에서 3일을 숙박하기 때문에 접근성에 중점을 둔 이번 숙소 역시 빠하르간지의 중심부에 있었다. 어눌한 한국어로 우리를 붙잡으려는 상인들과 릭샤왈라들을 헤치고 숙소에 도달한 우리는 그 순간 모든 체력이 방전이라도 된 듯 침대에 엎어져버렸다. 그래도 여행에서 시간은 금인지라, 빨리 정신을 차리고 숙소에서 점심을 간단히 해결하고 나갈 준비를 했다. 지하철을 타고 첫 관광 포인트로 이동했다.
올드델리 지역은 콜카타만큼이나 혼란 그 자체였다. 뉴델리 구역과 달리 도로도 제대로 돼 있지 않아 사람들과 릭샤들, 그리고 짐차들이 이리저리 뒤섞이면서 교통이란 게 존재하나 싶은 깊은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지하철 입구도 애매하게 있어서 우리는 졸지에 레드포트에서 가장 먼 입구로 올라오게 됐고 강하게 내리쬐는 햇볕과 먼지구텅이를 뚫고 걸어 나가야 했다.
10분 정도를 걸었을까, 레드포트의 거대한 붉은 입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미 레드포트에 가는 것만으로도 많은 인내심과 체력을 소비한 우리는 그래도 성은 좀 멋지겠지 싶은 마음에 기대심을 안고 들어갔다. 하지만 이게 웬걸, 내가 상상하던 그 레드포트는 그저 입구가 전부였다.
건축광이었던 샤자한 왕이 만들었다는 레드포트는 초반부의 몇 건축물을 제외하면 너무나도 휑한 기분이었다. 내부에 멋지게 조각되어있는 외벽이 눈에 띄긴 했지만 대부분이 훼손되어있었고 정원도 제대로 관리되고 있지 않았다. 첫날의 빅토리아 메모리얼이 떠올랐다. 구역 자체도 많이 넓지 않아 슬슬 걸어도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유랑이었다. 예전부터 꽤나 기대하고 있던 성이었기 때문에 실망감은 더 컸다. 정원의 중간에 구성돼 있는 물길은 간단한 통제조차 되지 않으며 많은 부분이 사람들의 발길에 파괴되었고 연못은 이미 한참 전에 메마른 것 같았다. 점점 인내심은 한계에 도달했다. 빨리 올드델리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우리는 도망치듯 코넛 플레이스로 떠났다.
델리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이 돈을 쓰러 몰리는 중심가인 코넛 플레이스. 이곳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중앙의 거대한 인도 국기였다. 인도 정부의 시스템에 크게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뭔가 아이러니한 기분이 들었다. 영국 식민지 시절에 형성됐다는 코넛 플레이스는 서양식 건물이 돋보이는 원형 지역이었는데 델리 중에서 그나마 가장 깔끔한 지역이었다. 이곳에 온 목적인 스타벅스 시티 컵을 사는 것. 근처 스타벅스를 들렀지만, 두 곳의 스타벅스에서 모두 시티 컵을 살 수 없었다. 하, 이게 물량이 들어오지 않는 건지 아니면 물량이 너무 조금 풀리는 건지는 알 수가 없지만 이후에 같은 곳을 두 번씩, 다른 지역의 스타벅스를 한 번 더 갔지만 그 어디에서도 시티 머크는 발견할 수 없었다.
인디언 머그를 사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과 함께 델리에서의 하루가 저물어갔다.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