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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

인간과 우주의 오디세이아

by 이멱여행자

이번 영화는 평점을 매기지 않았습니다. 의미가 없기에..


스탠리 큐브릭, 이름만으로도 가슴 뛰게 하는 그 이름.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직 한 번도 영화를 본 적이 없었다. 고전이라는 게 뭐 어찌, 그리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이름이던가. SF를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SF의 시초라고 볼 수 있는 2001: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이제야 봤다는 것도 어찌 보면 영화 블로거로서 큰 수치일지도 모른다. 알폰소 쿠아론, 크리스토퍼 놀란 등 유수의 감독들에게 크나 큰 영감을 안겨준 스탠리 큐브릭의 작품을 이제서라도 볼 수 있는 것에 대해 그냥 감사하도록이나 하자. 서론이 길어졌다. 그래도 큐브릭의 팬으로, 또는 그냥 영화의 팬으로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정도 서론에 지루해하지 말자. 그의 영화는 오죽했던가.


먼저, 영화의 해석에 대해서 찾고자 하는 독자라면, 다른 글들을 탐독하길 바란다. 미리 말하지만, 나 또한 영화를 두 번이나 봤음에도 언뜻 의미의 갈피만 잡을 수 있을 뿐이었지, 제대로 된 이해는 할 수 없었고, 그 갈피마저도 1시간 반 남짓의 조사를 통해서 대충 알게 된 사실에 내가 이해한 것을 보탠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또 하나, 확실히 하고 갈 것은, 이미 영화를 보고 이 글을 읽는 독자라면 크게 공감할 것이고, SF 고전에 대한 기대심으로 어떤 영화일지 미리 맛을 보려고 읽는 독자의 경우에는 크게 실망할지도 모른다. 2001:스페이스 오디세이는 굉장히 재미없다. 그런고로, 재미있는 영화를 원하는 독자들은 차라리 알폰소 쿠아론의 그래비티를 추천한다. 재미도 있고, 생각할 거리도 있고, 볼거리도 있으니.


어쩌다 보니 자꾸 말이 길어지는데, 영화를 처음 보고, 열심히 찾아보고, 중요 장면들을 다시 보고 난 결론은 이거였다. 아, 큐브릭은 영화를 만들기보다는 철학서를 만들고 싶었던 게 아닐까. 영화의 대표 음악 격인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니체의 모든 철학적 내용을 담은 걸작은 철학서이다. 스탠리 큐브릭과 같은 완벽주의자가 영화음악을 선정할 때, 그것도 그런 거대한 이름이 담겨있는 음악을, 단순히 음악이 우주 영상과 어울리기 때문에 사용했을까? 그것도 가장 중요한 대목인 처음 시퀀스와 마지막 시퀀스를 장식하게 했을까? 아니, 절대 그럴 수 없다. 왜냐면 그는 스탠리 큐브릭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고,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에 관한 질문은 인간이 사유를 시작한 이래 쭉 지속돼왔다. 인간의 과학이 고도로 발달한 지금도, 단지 인간은 유인원으로부터 진화하여 지금의 형태를 띠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만 있을 뿐, 미싱 링크 등 밝혀지지 않은 다양한 질문들이 무수히 존재하고 있다. 거기에 더불어, 인간은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가, 인간에게 구원은 있는가에 관한 질문들도 역사 속에서 살아 숨 쉬면서 현재까지 다다른다.. 큐브릭이 영화를 통해서 이런 철학적 질문에 대한 거대한 대답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그는 관객에게 그 질문을 다시 던지고 있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니체는 인간의 가장 이상적인 상태를 아이, 또는 어린이의 상태라고 봤다. 계속해서 스스로를 수련하고 단련하여 인간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존재, 초인이 되어야 한다. 물론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책의 내용을 이 단 한 줄로 요약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나는 큐브릭이 니체의 이런 생각에 어느 정도는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그게 영화의 결말 부분에 녹여져 있는 게 아닐까. 목성 너머 초월의 공간으로 넘어간 데이브가 마주하게 되는 또 하나의 검은 기둥(Monolith)은 아직 동물의 한계를 초월하지 못하고 있던 원숭이들을 한 단계 극적 도약시켜주었던 것처럼,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지 못하는 현생 인류를 또 한 번 크게 도약시켜주는 것이 아닐까. 인간의 근원과 인간의 끝을 보여주면서 큐브릭은 마치 이렇게 질문하고 있는 것만 같다. 우리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머리 속에 맴도는 말들은 굉장히 많다. 하고 싶은 말도 많고, 이 모든 걸 글로 뱉어내고 싶지만, 스스로가 아직은 그럴 깜냥이 되지 않는다는 걸 느끼고 있는 것처럼, 손가락이 원하는 바로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 말하고 싶은 게 있다. 앞서 말했듯, 2001: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재밌는 영화는 아니고, 굉장히 지루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그 과정, 그리고 장면 장면에 대해 감탄하는 그 과정, 순간순간 이게 1960년대에 나온 영화라는 걸 까먹고 다시 깨닫게 되는 그 과정, 상징들에 대해서 고민하고 찾아보는 그 과정만큼은 굉장히 흥미롭다. 마치 철학책과 같이, 불친절하고, 영상은 어렵고, 지루하지만 그 안에서 무언가를 찾아내려는 행위는 흥미롭기 그지없고, 그 과정만으로도 나와 영화 자체가 풍성해진다.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인간과 우주의 거대한 여행에 함께 동참할 수 있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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