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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멱 Oct 12. 2017

26 아그라 : 잃어버린 도시, 파테푸르 시크리

세계일주 24일차, 인도 16일차


아그라, 자이푸르에서 기차로 3시간, 델리에서 기차로 3시간 거리에 위치한 이 도시는 인도 여행의 가장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 그 이름은 생소할지라도 아그라를 대표하고 인도를 대표하는 타지마할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그라가 곧 타지마할이라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아그라는 인도뿐만 아니라 전 인류의 자산인 타지마할을 보기 위한 전 세계인들이 몰려드는 곳이다.

하지만 타지마할 이전에 아그라는 이미 인도 문명의 전성기를 누렸던 이슬람 무굴제국의 오랜 수도로 그 중요도는 말로 다 할 수 없다. 타지마할 말고도 아크바르 대제의 무덤과 아그라 포트 등의 무굴 제국 유적도 많이 남아있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관심이 갔던 곳은 아크바르 대제 시기 잠시 천도했었던 도시 파테푸르 시크리였다.
 
무굴제국의 전성기를 이룩한 천하무적의 아크바르 대제에게는 한 가지 큰 고민이 있었는데, 그것은 마땅한 후사를 얻지 못한 것이었다. 황제는 나라의 존망이 걸린 문제를 의논하기 위해 시크리에 살던 이슬람 성자 살림 치슈티를 찾아가서 의논하는데 그 후 왕자를 얻어 그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수도를 아그라에서 시크리로 천도하기로 결정한다.


신도시를 계획하고 건설한 뒤 도시를 파테푸르 시크리(승리의 도성 시크리)라고 명명하지만 지독한 급수난과 전염병의 창궐로 아크바르 대제는 새로운 수도를 버리고 다시 옛 아그라로 돌아온다. 그 이후 파테푸르 시크리는 방치된 채 남아있다가 20세기에 와서야 발굴 작업이 시작되어 복원되는데 존재가 잊힌 도시였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그 보존 상태가 굉장히 뛰어났다고 한다.


아그라의 이드가 버스 스탠드에서 버스를 타고 1시간 20분 정도를 가면 파테푸르 시크리 버스 정류장에 내리게 되는데 언덕 위로 시크리의 자마 마스지드로 통하는 승리의 문을 볼 수 있다. 바자르를 통해 승리의 문으로 올라가면 파테푸르 시크리 유적군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곳은 궁전 티켓을 달라고 하는 꼬마 애들이 정말 귀찮게 하니 마음을 단단히 먹는 것이 좋다. 티켓을 줄 경우 사주한 어른들이 티켓의 위조라든지 위법한 일에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무시하는 것이 좋다. 계속 무시만 하면 끈질기게 따라오기 때문에 적절히 화를 내면서 거절하는 것도 방법 중에 방법.

바보같이 우리는 자마 마스지드가 모스크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반바지를 입고 갔는데 때마침 우리를 포착한 어떤 한 청년이 우리에게 신발을 맡기라고 하면서 천을 둘러주는 것이 아닌가. 공짜라고 말하면서 어떤 무슬림 청년 가이드를 소개해주는데 그 역시 봉사하는 마음으로 가이드를 한다며 경계하는 우리를 안심시켰다. 영 찝찝했지만 그래도 공짜라고 얘기를 하면 후에 비용을 요구하는 경우는 없었기 때문에 그래, 어떤 꿍꿍이가 있나, 경계하면서 따라다니기는 했다.

설명이 허술하기도 했고 뭔가 스피디하게 넘어가는 경향이 강해서 별로긴 했지만 그래도 뭐, 일단 따라다니기는 했는데 한 바퀴 대충 돌고 나니 그제야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한 쪽 구석으로 우리를 데려간 청년은 우리에게 조각품을 강매하려고 했다. 그래도 가이드를 해준 게 있으니 나름 고민하는 척하며 한참을 둘러보다가 자리를 일어났다. 나름 자기가 무슬림이라 봉사하는 차원에서 한다고 말까지 했는데 그런 식으로 우리를 꼬드긴 게 매우 불쾌해서 팁을 달라는 말에 정말 적은 돈만을 쥐여주며 청년을 쫓아냈다

청년과 헤어진 후에야 자마 마스지드를 제대로 둘러볼 수 있었다. 모스크의 전체적인 모습은 델리의 그것과 유사했지만 안뜰 중앙에 있는 두 채의 무덤 건물이 눈에 띄었다. 하나는 백색의 대리석 건물로 매우 화려해서 놓치기 어려운데 이슬람 성자의 무덤이라고 한다. 그가 살림 치슈티인지는 가이드에게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지만 아무래도 그렇지 않을까. 그 옆의 건물은 이슬람 신자들의 무덤이 있는 건물인데 여성들의 무덤은 건물 밖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 조금 씁쓸했다.

자마 마스지드 안에서도 티켓을 달라는 아이들은 끈질기게 달라붙는데 짜증이 치솟기 시작해서 빨리 모스크를 벗어나 궁전 지역으로 달아났다. 무굴 건축 양식의 진수를 품고 있다는 파테푸르 시크리의 진짜배기는 궁전 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데, 조금 휑한 기분이 들다가도 건물의 보존 상태와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는 외벽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나도 모르게 경외심이 느껴졌다.

파테푸르 시크리를 무굴 건축의 정수라고 부르는 이유는 단순히 외관적 아름다움 때문만은 아니다. 무굴 제국은 외래 종족이 힌두 문화권 세계에 들어와서 제국을 세운 경우기 때문에 서로 다른 문화권 간의 융합과 화합을 중요시 여겼는데 파테푸르 시크리를 계획한 아크바르 대제는 그런 생각을 강하게 가지던 황제였다. 따라서 궁전 단지의 건축물들에는 이슬람 양식, 아프가니스탄 양식, 힌두 양식 등 다양한 문화권의 색채를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전체적인 외관은 무굴 양식이지만 벽면과 석주들의 섬세한 조각들은 힌두 양식이라고 한다. 또 대표적으로 눈에 띄는 건축물 중 5층의 계단 구조를 한 독특한 건물이 있는데 이것은 다양한 문화권에서 온 후궁들을 위해 여러 건축양식을 혼합해서 만든 건축물이라고 한다. 그래서 다른 석조 건축물들과 다르게 목조 건축양식으로 지어져있어서 다른 건물들과 비교해봐도 눈에 띄게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조금 더 여유롭게 돌아볼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생각보다 이동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기 때문에 체류할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그렇게 막차 시간으로 알고 다시 아까 내렸던 버스정류장으로 돌아가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차가 오지 않는 게 아닌가. 무슨 일인가 앞의 가게 주인에게 물어보니 소문으로만 듣던 인도인들의 파업이 문제였다. 버스 기사들이 파업을 해서 버스가 올지 안 올지 자신도 모른다고 하는 것이다. 하는 수없이 비싼 값에 릭샤를 타고 와야 했다. 가격은 둘째치더라도 바람이 어찌나 차갑던지. 두 시간을 벌벌 떨며 다시 아그라에 돌아오니 이미 시커먼 저녁이었다. 인도는 마지막까지 다이내믹하다. 그래도 내일은 마지막의 마지막이니 우리가 참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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